혼자 사는 노인 인구 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이들의 건강관리 및 돌봄을 위한 대안으로 ‘디지털 헬스케어’가 떠오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등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기기 활용 폭을 넓혀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직접 관리가 취약한 독거노인의 여건을 고려해 고령 친화적 디지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중고령 1인 가구의 특성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율은 2010년 15.7%에서 2050년 29.8%로 늘고, 같은 기간 60대 1인 가구도 22.3%에서 35.3%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65세 이상 1인 가구 비율은 2023년 기준 32.8%로, 2020년 대비 13%p 급증했다. 이들 중고령 1인 가구는 미래에 예측되는 어려움으로 ‘질병 악화 시 돌봄에 대한 걱정’(41.0%)을 1순위로 꼽았다.
고령화 사회 속 1인 가구가 늘면서 주목받고 있는 분야가 돌봄 격차 등을 해소할 수 있는 ‘시니어 디지털 헬스케어’이다. 25일 의료기기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고령자를 위한 생체신호, 돌봄로봇, 배설 케어 등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에 둔 다양한 의료기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보건소, 복지기관 등은 스마트기기를 지원하는 사업을 잇따라 추진하면서 디지털 의료기기의 수요는 증가세를 그리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코로나19 유행 때부터 ‘AI·IoT 기반 어르신 건강관리’ 사업을 진행해왔다. 서울, 광주, 경기, 강원 등 전국 24개 보건소(전담인력 109명)에서 보건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스마트밴드, 자동혈압계, 혈당측정기, 체중계, AI 스피커 등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해당 기기들을 애플리케이션(앱)과 연결하면 건강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서울,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등 일부 지자체에선 독거노인을 위한 AI 돌봄로봇을 지원한다. 청송군의 경우 홀로 사는 취약계층에 AI 로봇 ‘효돌이’를 대여 중이다. 효돌이는 인형 모양의 로봇으로, 음성으로 말벗이 되어주고 식사·복약 같은 일상 관리와 노래·퀴즈·체조 등 인지 강화 콘텐츠 재생 기능을 갖췄다. 노인의 움직임이 일정 시간 이상 확인되지 않으면 보호자의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전송돼 위험 상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카이스트가 개발한 ‘실벗’, 미스터마인드의 ‘빠망이’, 로보케어의 ‘보미’ 등 다양한 돌봄로봇이 치매예방센터, 보건소, 시·도청 등을 통해 보급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의료기기의 기능은 다각화되고 있다. 디엔엑스(DNX)는 화장실 변기, 텔레비전 리모컨 등 평소 자주 사용하는 물건에 태그를 부착하면 노인의 실시간 움직임을 포착해 자체 앱으로 전송하는 ‘AI 순이’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제로웹의 케어벨도 센서를 기반으로 24시간 밀착 케어하는 서비스다. 대상자의 일상 패턴 데이터를 비대면·비접촉 방식으로 수집하고, AI 딥러닝을 통해 이상 징후를 감지한다. 상황별로 현장 출동, 의료기관 연계가 가능하다.
고혈압, 심부전 등 심혈관질환을 앓는 고령 환자가 늘면서 생체신호 기기도 편의성을 높여 가정으로 속속 진입하고 있다. 스카이랩스의 스마트 반지형 혈압계인 ‘카트 비피 프로’는 24시간 혈압 측정이 이어진다. 최근엔 세계가전박람회(CES) 2025에서 산소포화도, 체온, 호흡 수 측정 기능을 추가한 웨어러블 디바이스 ‘아폴론’을 선보이기도 했다. 씨어스, 뷰노, 인솔, 오므론 등은 가정용 심전도 측정 의료기기를 내놓았다. 몸에 부착하거나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 부정맥 등 심장 이상 반응을 파악할 수 있다.
연구개발은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진다. 매트리스 기업 앤씰은 수면 중 낙상하거나 장시간 움직임이 없는 사용자의 신호를 알아채 보호자나 인근 기관으로 알림을 전하는 스마트 매트리스를 개발 중이다. 브리스텍은 AI 기술을 적용한 욕창 예방 매트를 연구하고 있다. 해당 제품은 환자의 누워있는 자세, 온도·습도를 추적하고 욕창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기압을 조절한다.
박영란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지난 18일 열린 헬스케어 에코 시스템 심포지엄에서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독거노인 수가 200만명을 넘어섰다”며 “가장 큰 문제는 독거노인의 경우 식사, 수면, 운동 등 건강과 직결되는 부분이 전반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또 “정부 기조에 따라 노인의 탈시설화, 커뮤니티 케어가 추진되면서 노인 스스로 집에서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디지털 헬스케어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돌봄 시스템 구축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시니어를 위한 헬스케어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면서 “고령 친화적 디지털 전환이 이뤄져야 하며, 디지털 정보 격차를 겪는 점을 고려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시니어에 대한 차별과 부정적 인식을 개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