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의사·의대생 명단이 적힌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제작·유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직 전공의가 첫 재판에서 기소된 혐의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이용제 판사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공의 정모씨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정씨는 지난 7월 의료 현장에 남거나 복귀해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전공의와 의대생의 신상 정보를 담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한 혐의를 받는다. 이 블랙리스트는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와 텔레그램 등에 총 26회 배포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씨는 게시물에 피해자들의 실명, 소속 병원, 진료과목, 대학 등 개인정보를 기재하고 이들을 ‘감사한 의사’로 비꼬아 칭했다.
정씨의 변호인은 “객관적 사실관계는 인정하고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면서도 “법률적으로 스토킹 범죄로 처벌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스토킹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야 하고, 특정인을 통해 상대방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유발해야 하며, 지속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요건을 충족하는지 의문”이라며 “범죄 일람표에 기재된 1100명의 피해자 중 485명은 개인정보 게시가 1~2회에 그치고, 44명은 3회에 불과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공개 행위가 지속적·반복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어 “또 피해자 중 일부가 피고인의 행위로 불안감과 공포심,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고 진술할 뿐 나머지는 단순한 불쾌감을 이야기했다”면서 “피해자 중 13명 정도는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1차 공판 후에는 정씨가 청구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심문이 진행됐다. 정씨는 재판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21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했다.
정씨 측은 “공소장의 죄명은 스토킹 처벌법 위반이지만 일반적으로 아는 스토킹 범죄와는 너무나 다른 사건이고, 명단 게시 행위 외에는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해를 가한 적이 없으며, 같은 동료인 의사에게 해를 가할 의사도 없다”면서 석방을 요청했다.
반면 검찰은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를 넘어 왜곡된 인식으로 동료 의사들을 비난받게 했다. 2차 가해와 또 다른 낙인찍기도 우려해야 한다”며 “이 사건은 제3자 온라인 스토킹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또 “피고인은 피해자들을 비난받게 할 목적으로 명단을 게시했고, 피해자를 조롱하면서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곧바로 추가하겠다고 했다. 댓글을 통해서도 온라인 ‘좌표 찍기’를 했다. 피해자들은 극심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며 재판부에 보석 청구를 기각해 달라고 청했다.
양측의 의견을 들은 재판부는 보석 여부에 대해 추후 결정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