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임시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확고한 재신임을 받으며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를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 한미약품은 신약 개발 성과를 가시화해 견고한 경영 체계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미약품은 19일 서울 교통회관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박재현 대표와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의 해임 안건과 박준석·장영길 이사 선임 등의 안건을 다뤘다. 이날 출석 주식수는 1021만 9107주로 집계됐다. 자기주식을 제외한 총수 1268만 214주 중 80.59%가 참석했다.
박재현·신동국 이사 해임의 건에 대해선 참석 의결권의 53.62%가 찬성했다. 이사 해임의 건은 특별결의 안건으로, 주총 참석 의결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형제(임종윤 한미약품 사내이사·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측이 66.7%의 표심을 얻지 못하면서 안건은 부결됐다. 박준석·장영길 이사 선임의 건은 자동 폐기됐다.
박 대표는 임시주총이 끝난 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룹에 긍정적인 결론이 나와 기쁘다”면서도 “경영권 분쟁을 최대한 빨리 종식하는 게 회사 방향성을 위해 좋지 않겠냐는 주변의 우려가 지속되고 있어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이어 “소모적 다툼보다는 회사 발전을 위한 방향성을 고민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한미사이언스 측도 임시주총이 끝난 만큼 고소·고발을 취하해 협력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박 대표를 포함해 한미약품 본부장들은 앞으로 독립경영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영권 분쟁에 휘둘리지 않는 견고한 경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저와 함께 한미약품을 이끌어가는 본부장님들과 합심해 한미의 브랜드를 재건하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어 “독립경영 체제는 유지하되 한미사이언스와의 위탁관계 역시 지속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신해곤 글로벌영업본부 상무는 “내년에는 실적을 확대해 탄탄한 주가 흐름세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박명희 국내사업본부 전무는 “지난해부터 한미약품은 전문의약품 매출 1위를 유지하고 있고, 이를 통해 연구개발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2028년 목표했던 매출 1조7000억원 달성도 무리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어 “오늘 임시주총 결과가 흔들림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의 경영 주도권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임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임시주총 이후 “지주사 대표로서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으나 그룹 전체가 최선의 경영을 펼치고, 올바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을 남겼다. 한미사이언스 관계자는 “매우 아쉬운 결과이나 해임 요건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사실과 상황들이 시간이 갈수록 구체화될 것”이라며 “진실이 드러나면 주주들의 판단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임시주총 결과에 따라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이사회 장악 시도는 무산됐다. 한미사이언스는 4자 연합(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임주현 부회장·신동국 한양정밀 회장·킬링턴 유한회사) 측인 박 대표와 신 회장을 해임하고 형제 측 인사로 분류되는 박 사내이사와 장 사내이사를 한미약품 이사회에 진입시켜 경영권을 확보하려 했다. 이사회 구도를 4대6에서 6대4로 개편하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4자 연합과 형제 측이 5대5 구도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라데팡스파트너스와 손잡은 4자 연합의 우호 지분이 늘면서 더 유리해진 상황이다. 형제 측은 상속세 납부 등으로 지난 주총 이후 지분이 줄었다. 일각에서는 형제 측 지분이 줄어 경영권이 약해지면서 4자 연합과 타협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장남인 임종윤 사내이사는 지난 13일 모녀인 송 회장, 임 부회장에게 한미약품 임시주총 철회를 제안하며 경영권 분쟁 장기화를 막자고 피력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형제 측은 상속세 납부 및 주식담보대출 상환 압박 등을 받고 있는 상황으로, 지분까지 줄어들고 있다”며 “내년 정기주주총회까지 우군을 확보하지 못하면 주도권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