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기 침체에 허덕인 10대 건설사들이 수장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올해 10대 건설사 7곳이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내년 경제 불확실성이 더 커지며 건설 업계의 실적 반등 여부가 주목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시공능력평가순위 10위권 내 건설사 중 삼성물산, GS건설, 롯데건설을 제외한 7곳이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GS건설은 총수 4세 허윤홍 대표가 지난해 12월 취임해 사실상 연임한 곳은 삼성물산과 롯데건설에 불과하다.
건설 경기 침체로 인한 실적 악화에 업계는 이른바 ‘재무통’ 최고경영자(CEO)를 찾았다. 대우건설은 지난 17일 본사 푸르지오 아트홀에서 김보현 사장 취임식을 개최했다. 김 대표는 대우건설의 핵심 경영진 중 한 명이다. 지난 2021년 중흥그룹이 대우건설 인수를 추진할 당시 중흥그룹의 인수단장을 맡아 인수 모든 과정을 총괄했다.
HDC그룹은 지난 6일 정경구 HDC 대표를 HDC현대산업개발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정 대표는 2008년 HDC현대산업개발 재무팀 입사했으며 2020년 최고재무책임자(CFO) 대표이사에까지 올랐다. 2022년부터는 HDC 대표로서 그룹의 신사업 및 인수합병(M&A)을 주도해 재무전문가로 꼽힌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달 15일 홍현성 대표 후임으로 주우정 부사장(기아 재경본부장)이 사장으로 승진, 내정됐다. 주 사장은 그룹 내 대표적 재무 전문가로 기아 창사 이래 최고 실적 달성에 기여한 핵심인물이다.
SK에코플랜트도 지난 7월 김형근 SK E&S CFO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례적인 연중 사장 교체로 눈길을 끌었다. 김 사장은 SK그룹 내에서 전략 및 포트폴리오매니지먼트 역량과 재무 전문성을 두루 갖추 재무통으로 불린다.
DL이앤씨는 지난 8월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박상신 주택사업본부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지난 5월 서영재 대표를 선임한 지 3개월 만이다. 박 대표는 주택 전문가이면서도 경영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꼽힌다. 그는 대림산업 대표 시절 사업 구조와 조직 문화 혁신을 주도하며 실적을 대폭 끌어올렸다. 2019년 사상 최대인 1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두고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빅3’에 올랐다. 삼호에선 경영혁신본부를 맡아 워크아웃 조기졸업과 경영 정상화를 이끌어 냈다.
지난 3월 취임한 전중선 포스코이앤씨 대표도 그룹 내 대표 재무·전략통이다. 전 대표는 포스코 전략기획본부장 및 포스코홀딩스 전략기획총괄 등을 역임했으며 2018~2022년 포스코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냈다.
신임 최고경영자(CEO)들의 어깨는 무겁다. 재무건전성 확보와 수익성 개선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올해 10대 건설은 전년 대비 악화한 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은 대다수 5%를 넘지 못했고 2%~4%로 매우 저조한 실적이 이어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0대 건설사 중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률 5% 이상을 기록한 곳은 삼성물산 건설부문(5.2%)이 유일했다. 이어 대우건설(4.58%), HDC현대산업개발(4.44%), DL이앤씨(4.3%), GS건설(2.63%), 포스코이앤씨(2.2%), 현대건설(1.8%), SK에코플랜트 솔루션 부문(1.2%) 등으로 조사됐다, 이는 100만원 투입해 5만원을 채 벌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평균 매출 원가율도 92.85%에 달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원가율 95.88%로 가장 높았다. 이어 현대건설(95.78%), SK에코플랜트(93.60%), 대우건설(93.36%), 포스코이앤씨(92.72%), 롯데건설(92.49%), GS건설(91.75%), HDC현대산업개발(91.03%) 순이었다. DL이앤씨(89.06%)만 유일하게 80%대 원가율을 기록했다.
원가율은 매출에서 원자재가, 인건비 등 공사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업계에선 80%대를 적정 원가율로 보고 있다. 원가율이 오른 데는 인건비를 비롯한 공사비 급상승이 주원인을 꼽힌다.
업계에서는 새 수장들이 수익성 개선과 사업 활성화에 무게를 둘 것으로 전망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가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플랜트, 주택 출신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해야 하는데 이를 포기하고 재무 쪽에 힘을 주는 추세”라며 “숫자적인 수익 개선 등에 목적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건설 산업은 주기가 긴데 안 좋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레고랜드 PF, 유동성 위기 등이 대표적”이라며 “현재는 건설 경기 회복 시점을 대비하기 위한 시간으로 보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 부동산 경기 활성화는 어려워 재무 혹은 전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재무통) 경영진을 배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