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사라진 상인·주민…‘집회 전쟁터’ 된 한남동

일상 사라진 상인·주민…‘집회 전쟁터’ 된 한남동

기사승인 2025-01-10 06:00:08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모습. 곽경근 대기자 

“매출이 문제가 아니에요. 나라를 지키러 왔는데 인색하다면서 음식을 주문도 안 하고 이것저것 요구합니다. 오픈 전이든 마감 후든 마구잡이로 들어와서 화장실을 쓰고, 문을 열어달라며 쾅쾅 두들겨요” (대통령 관저 인근 카페 사장 백모씨)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이 발부된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각종 집회‧시위가 열리고 있다. 집회가 장기화하면서, 인근 상인과 주민들은 소음과 쓰레기 등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9일 한남동 관저 인근은 한파 특보에도 불구하고 집회 열기로 뜨거웠다. 탄핵 찬반 양측 집회 참가자들은 “탄핵 무효”와 “즉각 체포” 구호를 연신 외쳤다. 양측 집회는 내기라도 하듯 점점 목소리 볼륨을 올리는 모양새였다. 무대 옆 초대형 스피커에서는 온종일 노래가 흘러나왔다. 소음 때문에 옆 사람과는 대화조차 어려웠다.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는 집회에 한남동 상인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한남동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성모(49·남)씨는 “소음도 문제지만, 쓰레기 때문에 골치가 아주 아프다”며 “근처 편의점에서 물건을 산 사람들이 가게 앞 화단에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고 말했다. 이어 “집회 참석자들이 몇십 명씩 한 번에 몰린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골목을 거닐면 ‘이재명 체포’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 등이 적힌 전단과 태극기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외국인 관광객과 나들이 나온 20~30대에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찰 버스 수십 대로 길게 세워진 차벽은 동네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트렌디한 맛집과 카페 등이 밀집해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던 한남동이 순식간에 ‘집회 전쟁터’로 뒤바뀐 모습이다.

한남동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백모(40대·여)씨는 “가게 안에서 ‘빨갱이’라고 고성을 지르는 등 매너 없는 분들이 많다”며 “한 두분이 그러는 것이 아니다. 하루만 해도 100여명이 난동을 피운다”고 말했다. 이어 “한남동은 원래 조용한 동네였다”며 “단골들은 (이 상황을) 너무 안타까워한다”고 토로했다. 

가게 내부 화장실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주문하지 않은 채 이용을 요구하는 시민들 탓에 ‘공용화장실’이 된 지 오래다. 상인들은 이 소란이 조속히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다. 백씨는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어르신들께 무슨 일이 나지 않을까 정말 걱정된다”며 “경찰분들도 너무 고생이 많다”고 말했다.

관저 인근에서 거주하는 주민들과 직장인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회가 차도를 점거해 열리면서 차량 정체가 심해졌다. 일부 보행로는 경찰 경비로 막혔다. 주민들은 늘 다니던 산책로도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한남동 관저 인근에서 근무하는 현모(66·여)씨는 “월요일에는 길이 막혀서 회사로 들어가지 못했다”며 “그래서 결국 근무를 못 했다. 그날 임금도 못 받게 된 것”이라고 호소했다.

도로 위 차량과 뒤섞인 인파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했다. 현씨는 “목동에서 오는데 차가 너무 막힌다”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버스에서 내릴 때도 늘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편 법원이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재발부하면서 영장 재집행 시도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탄핵 찬반 집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시민 불편이 커지자, 서울시는 관련 단체를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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