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올 때 저을 노가 없다”…길 잃은 2050 원전 로드맵

“물 들어올 때 저을 노가 없다”…길 잃은 2050 원전 로드맵

- 지난해 연내 발표 목표 무산…“언제가 될지 모른다”
- 한미 원전동맹 등 원전 생태계 회복 속 로드맵 ‘지지부진’
- 11차 전기본부터 여야 평행선…“산업·가계 경제 악영향” 우려

기사승인 2025-01-15 06:00:09
전남 영광군 소재 한빛원전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지난해 기준 연내 최종안 발표를 목표로 추진 중이던 정부의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이 탄핵 정국 속에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원전 수출 확대 기조 속 한미 원전동맹 등 호재에도 업계가 마냥 웃지 못하는 이유다.

정부기관 한 관계자는 15일 “일단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원전산업 지원 특별법 등 법제적인 협의가 이뤄져야 로드맵도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현재 상황으로는 언제까지 발표하겠다고 누구도 확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24조원대 체코원전 신규 건설 수주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초부터 원전산업 지원 특별법을 추진, 10월 말 관련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특별법에는 원전을 산업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기본계획, 종합 지원을 위한 심의위원회 설치, R&D(연구개발)·인력 양성 지원, SMR(소형모듈원전) 지원, 수출활성화 등이 담겨 있다. 

당초 정부는 이를 토대로 연내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을 수립해 원전산업을 정권에 영향을 받지 않는 법정기본계획으로 이행할 예정이었다. 지난해 11월22일 초안까지 확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 속 여야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모두 멈춰진 상태다. 원전산업은 대표적인 ‘윤석열 표’ 정책 중 하나다.

탈원전 이후 원전 생태계를 회복 중이던 업계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1년과 2022년 각각 21조6000억원, 25조4000억원을 기록한 국내 원전산업 매출은 정권 교체 이후인 2023년 32조1000억원으로 추산,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수출 부문에선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체코원전 수주 사업의 최종 계약을 두 달 앞두고 있다. 또, 최근 미국과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MOU)’을 체결하면서 수출 활로가 크게 열렸다는 분석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원전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점차 증가하는 상황에서, 수출과 관련해 미국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업계 전반에 큰 기회”라며 “로드맵이 없다고 이런 부분들이 당장 위축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 생태계 회복과 현안 해결을 위해선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로드맵이 지연되면서 국내 가동 중인 원전 운영에 대한 위기도 심화하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 부족으로 당장 2030년부터 한빛, 한울, 고리 원전 순서로 습식 저장조가 포화돼 가동 중단 위기에 놓여 있으며, 설계수명이 만료된 원전의 안전성을 점검해 가동을 지속하는 계속운전 제도는 탈원전 여파 속에 신청이 늦어지면서 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 28기 중 2030년까지 최초 운전 허가가 만료되는 원전은 10기로, 이미 고리 2·3호기가 멈춘 상태이며 내년 말까지 5개 원전이 멈출 예정이다. 고준위방폐물처리장, 계속운전 관련 제도 개선 방안 역시 당초 발표 예정이었던 로드맵에 담길 예정이었다.

시간이 촉박한 정부는 야권을 설득하기 위해 11차 전기본에서 오는 2038년까지 신규 대형 원전 건설 목표를 기존 3기에서 2기로 축소하고, 태양광 발전 설비용량 2.4GW(기가와트)를 추가로 확대하는 절충안을 최근 제시했다.

이에 따라 2038년 발전 예상량에서 원전은 기존 실무안 249.7TWh(테라와트시)에서 248TWh로 1.6TWh 축소 조정됐다. 원전 비중은 35.6%에서 35.1%로 0.5%p 낮아졌다. 재생에너지의 경우 기존 204.4TWh(29.1%)에서 206.2TWh(29.2%)로 1.8TWh(0.1%p) 늘었다. 

다만 이러한 절충안에도 여야 합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5월 11차 전기본 실무안 초안 발표 이후 야당은 글로벌 탄소저감 흐름에 따라 재생에너지 비중이 원전에 비해 너무 적다는 점을 토대로 반기를 들며 해당 안건을 국회 보고안에서 제외해 왔다.

고범규 사단법인 사실과과학네트웍 이사(시민단체)는 에너지 정책의 여야 갈등과 관련해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의 전력가격 불안전성 및 폭등 위험성은 커질 수밖에 없고, 산업경제뿐만 아니라 국민의 가계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서 “지금은 정치권과 시민단체, 원자력계가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