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은 설레지 않다는 것 [쿡리뷰]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설레지 않다는 것 [쿡리뷰]

기사승인 2025-01-15 10:38:04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원진아, 도경수 스틸. 쏠레어파트너스 제공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감독 서유민)의 진짜 비밀은 설레지 않는 로맨스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시간의 비밀이 숨겨진 캠퍼스 연습실에서 유준(도경수)과 정아(원진아)가 우연히 마주치면서 시작되는 판타지 로맨스다. 2007년 동명의 대만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야기는 유준이 귀국하면서 시작된다. 심리적 요인으로 피아노 연주가 어려워졌고, 교환학생을 핑계로 휴식 차 한국에 왔다. 그에게 아버지(배성우)가 재직 중인 음악대학은 도피처인 셈이다. 그 도피처에서 사랑이 싹트고, 트라우마마저 이겨내고 만다. 진부하지만 꽤 설레는 전개다.

원작과 달리 예술고등학교가 아닌 음악대학이 배경인데, 빛을 잘 활용했다. 유준과 정아의 첫 만남에서 특히 그렇다. 음악실의 낡은 창을 투과하는 햇빛이 공간 온도를 따뜻하게 만들고, 덕분에 살짝 바랜 듯한 화면의 느낌이 이들의 눈맞춤을 더 로맨틱하게 만든다. 꼭 고등학교가 아니라도 풋풋하고 절절한 사랑이 시작되기에 충분하다고 설득한다.

도경수의 눈빛도 한몫한다. 이 역시 유준과 정아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도드라진다. 피아노 아래에 있는 정아에게 말을 건네는 유준이 정면 클로즈업으로 잡히는데, 뻔한데도 숨을 잠시 참게 된다. 특유의 소년미를 품은 그의 눈망울은 두 사람이 첫눈에 반했을 것이라고 절로 짐작게 한다. 원진아의 재해석이 더해져 발랄해진 정아 역시 싱그러운 캠퍼스물의 매력을 끌어올린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도경수 스틸. 쏠레어파트너스 제공

다만 이게 전부다. 설레지 않는다. 이들이 윤슬 어린 호수에서 숭어인지, 송어인지, 잉어인지 모를 물고기를 함께 봐도, 커튼과 창틀 사이 좁은 공간에서 숨을 나눠 쉬어도, 유준이 깜빡 잠든 정아의 머리를 차창에 부딪히지 않게 손으로 감싸도, 유준이 LP숍 데이트 중 정아에게 헤드폰을 끼워줘도, 무감하다. 로맨스의 정석 같은 신들인데 감흥이 없다.

원작의 명장면 중 하나인 피아노 배틀도 큰 감동이 없다. 연주자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건반 위 미끄러지는 손가락, 그랜드 피아노 뚜껑 아래 해머의 오르내림이 교차되는 형식이 원작과 흡사하다. 피아노를 격정적으로 연주하는 신에서 흔한 연출이지만, 원작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에게는 장면들이 겹쳐보일 수밖에 없다.

결국 리메이크의 한계다. 도경수와 원진아의 케미스트리는 취향의 영역이니 차치하더라도, 이 작품의 힘은 ‘시크릿(Secret)’에서 나오는데 이미 비밀을 아는 관객에게는 도무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차별화를 위한 추가 요소 중 돋보였던 대목은 놀랍게도 배성우의 역할이다. 인간미 넘치는 인물을 맛깔난 생활연기로 그려내는데, 의외의 웃음을 계속 준다. 로맨스물에서 어쩐지 그의 등장을 기다리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

그렇다고 게으르다는 인상은 없다. 시그니처곡 ‘시크릿’을 제외하고 모든 배경음악을 바꿨다. 무엇보다 유준과 정아의 테마곡인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는 한국 정서와 잘 맞아떨어진다. 이 부분만큼은 서유민 감독의 의도대로다. 오는 28일 개봉. 전체 관람가. 상영시간 103분.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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