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작품 뒤에서 작업하는 입장인데,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 기회가 주어져서 행복했어요.” (채경선 미술감독)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성공은 황동혁 감독과 이정재, 이병헌 등 출연진만의 것이 아니다. 특유의 색채와 감각적인 배치가 돋보이는 게임장, 테마곡 ‘웨이 백 덴(Way Back Then)’를 비롯해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사운드트랙, 그리고 이 모든 요소가 융화된 컷 하나하나가 모여 작품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리고 이 정체성은 ‘오징어 게임’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큰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더 나아가 시즌2가 시즌1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오징어 게임’ 열풍의 숨은 주역, 채경선 미술감독, 정재일 음악감독, 김지용 촬영감독을 16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즌2가 글로벌 흥행 중인데 작품에 참여한 소감은.
시즌1을 하고 나서 또 같이 작업하게 됐는데 부담감이 컸어요. 어떻게 하면 시즌1처럼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서 결과물을 볼 때 굉장히 떨리더라고요. 그런데 시즌2에서도 ‘오징어 게임’의 특색, 시즌1에서 사랑해 주셨던 부분이 풍요롭게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채경선 미술감독)
성공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감독님 생각을 음악으로 구현해야 하는데, 이 긴장감이 더 심했어요. 게다가 저는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서 ‘또 시리즈를 해야 한다고?’라는 부담도 있었고요. 황동혁 감독님의 팬인데 훌륭한 전작을 함께 한 김지용 촬영감독님과 같이 하게 됐어요. 팬으로서도 작품을 잘 봤어요. (정재일 음악감독)
1편을 함께하지 못해서 팬의 마음으로 2편에 참여했어요. 그래서 세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요. 완성본을 보면서 ‘시즌2를 내가 찍었네? 재밌네?’ 했죠. 시청자였다가 같이 만드는 팀이 돼서 즐거웠고, 큰 스트레스는 없었습니다. (김지용 촬영감독)
-비주얼 측면에서 시즌1과 달리 가져가려고 했던 부분이 있나.
초반에는 ‘시즌1보다 더 잘 만들 거야’, ‘새로운 비주얼을 보여줘야지’ 이러면서 시작했는데, 너무 과해져서 시나리오로 다시 돌아왔어요. 게임의 공간감을 만들어야 하는데 비주얼적으로 확장시켜서 보여주려고 했던 거죠. 그런 모습에서 자책도 하고 부담감을 떨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숙소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장처럼 아이콘화된 공간들이 또 나오는데, 이야기에 더 집중하자 해서 시즌1과 똑같이 된 거예요. 체육복도 다른 컬러 안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꼭 초록색을 가져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돌고 돌아 원점으로 오게 됐어요. (채경선 미술감독)
-시즌2에서는 병정들의 숙소도 주의 깊게 다뤄지는데.
시즌2에는 세모, 네모가 나오는데요. 어떻게 차이점을 둘까 했을 때 면적 싸움이었어요. 동그라미는 변기만 주고, 세모는 샤워실까지 주고, 네모는 TV를 볼 수 있는 식이에요. 예를 들면 호텔 등급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요. 컬러 매치에도 신경을 썼고요. (채경선 미술감독)
-시즌2 제작을 위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었나.
영감의 시작은 OX 투표 장면이었어요. 파란색과 빨간색은 굉장히 대비되잖아요. 그래서 선택의 개념을 확장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텔이나 클럽 등 게임장 밖에 있을 때도 붉은색, 푸른색 혹은 차가운 색 대비를 많이 시켰어요. 게임장 안과 바깥세상의 모습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김지용 촬영감독)
컬러에 대한 책들을 많이 봤어요.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 뭘지 공부한 거죠. 색의 의미를 고민해서 다양하게 컬러를 추가했어요. 그렇게 넣은 게 오렌지, 바이올렛이에요. 가장 고점의 권력을 상징하는 컬러로 바이올렛을 썼고, 오렌지는 따뜻하고 안정적이지만, 레드를 따라하고 싶은, 그래서 욕망적인 컬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양면적인 측면에서 오렌지를 쓰게 됐습니다. (채경선 미술감독)
이번 작품은 인물이 굉장히 많고, 절망 끝까지 갈 때도 있지만 따뜻함이 발현되기도 했어요. 이야기에 굉장히 몰입해서 일필휘지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단연코 꼽는다면 5인6각 장면이에요. 모든 사람이 한마음이 되잖아요. 그런 지점이 와닿았어요. 또 프론트맨(이병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반은 거짓이고 반은 진실이잖아요. 이 장면에서도 그랬습니다. (정재일 음악감독)
-메인 테마곡 ‘웨이 백 덴’이 크게 주목받았는데, 이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이번에도 그런 곡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화면과 어울리면서도 유니크할 수 있을까 신경을 썼죠. 보통은 피아노로 작업을 하는데 이번에는 기타로 잡아볼까 했어요. 70년대 블루스나 웨스턴 마카로니 음악들을 참고하면서 독특함을 찾아보려고 했어요.
또 시즌2에는 삽입곡이 굉장히 많은데요. 이 곡들은 황동혁 감독님 스케치에 쓰여 있었어요. ‘플라이 투 더 문(Fly to the moon)’은 제가 편곡해야 했지만, 다른 곡들은 원곡 그대로 쓰였어요. (정재일 음악감독)
-게임장 중 짝짓기 게임 세트장이 많이 회자되고 있는데.
현장에서도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 행복했었는데, 만들 때는 굉장히 고생스럽긴 했어요. CG 없이 게임장을 만들어 보려고 도전한 것도 있어서 공을 많이 들였어요. 반짝거리는 전구들도 전시팀이 하나하나 단 거예요. 1000개 정도 될 거예요. 디자인 콘셉트를 잡을 때는 축제 같은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또 특수효과팀, 특수장비팀과 무게, 속도를 다 계산해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했어요. (채경선 미술감독)
(부감으로 이 장면을 찍은 이유는) 시청자들이 체험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또 참가자들은 감시당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샷이 게임마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이 세트장은 원판도 있고 올라가면 (구도가) 괜찮겠다 싶어서 세팅했는데 생각보다 되게 괜찮더라고요.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김지용 촬영감독)
-시즌2, 시즌3 제작비가 1000억원이라는 설이 있는데 체감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미술은 특히 예산이 중요해요. 제가 원 없이 디자인한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넷플릭스에서 예산을 잘 분배해 주셨어요. 그래서 시즌1에서 미술도 많은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었고요. 기술적으로 풍부하게 했다기보단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 표현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시즌2, 시즌3을 제작할 때도 저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어요. 큰 변화는 없었고 제 방식대로 작업했습니다. (채경선 미술감독)
-영희와 철수가 화제다. 시즌1부터 등장했던 영희는 교체설이 돌고, 시즌3에는 철수가 등장할 예정인데.
영희는 교체되지 않았어요. 다만 반복되는 장면에서 변주를 주고 싶었어요.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서 무섭고 괴상해지는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렌즈 선택이나 카메라 거리를 극단적으로 설정하면서 다르게 표현해 봤어요. 교체라는 말을 듣다니 성공했네요. (김지용 촬영감독)
영희를 디자인할 때 알려지긴 했는데 국민학교 교과서 표지를 보면 영희 옆에 항상 철수가 있잖아요. 시즌1 때 철수도 같이 그렸었어요. 교과서에 나오는 그대로 모티브 삼지는 않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스케치를 많이 했어요. 일단 영희의 짝꿍으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채경선 미술감독)
-올여름께 공개될 시즌3에 대한 관심도 높다. 기대 포인트를 살짝 귀띔해 준다면.
시즌2를 능가하는 새로운 게임장이 펼쳐집니다. (채경선 미술감독)
시즌2에서 불만족스러웠던 부분, ‘여기에서 이렇게 끝내면 어떻게 해’ 이런 모든 불만이 해소될 수 있을 겁니다. (김지용 촬영감독)
이야기가 완결되니까 더 극한으로 치닫습니다. 음악도 따라가야만 하고요. 극한으로 치달음과 동시에 감정이 요동치는 느낌이 있을 겁니다. (정재일 촬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