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원료의약품 수급, 인플루엔자(독감) 환자 급증 등으로 인해 의약품 품절 사태가 해마다 반복되는 가운데 대체조제 확대가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약사계와 정치권은 대체조제 활성화를 위한 논의에 나섰지만 의료계의 반발이 커 국회 통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2일 의약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대체조제 사후 통보 방식을 추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약사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3월4일까지 입법 예고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21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성분명 처방 및 대체조제 관련 법안을 심사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계속 심사’를 결정했다. 현재 약사법 제27조는 처방전 의약품과 성분, 함량, 제형이 같은 다른 의약품을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동의를 얻어 대체조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약사법에 있는 대체조제 용어를 ‘동일성분조제’로 바꾸고, 약사가 대체조제 사실을 의사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도 사후 통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기존의 대체조제 사후 통보 방식인 전화, 팩스 외에 심평원 업무포털 시스템을 추가해 의료기관과 약국 간 실시간 소통과 대체조제 정보 공유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악사계는 대체조제란 용어를 ‘동일 성분의 다른 약으로 조제해준다’는 의미로 바꿔 국민의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21일 성명서를 통해 “동일 성분 의약품 대체조제는 특정 단체를 위함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필수적으로 추진돼야 할 정책”이라며 “의약품 수급이 불안정해 국민들이 안정적으로 의약품 조제·투약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한다면 약사법 개정안 통과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체조제는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를 해소하고, 폐기 의약품을 줄여 합리적 약제비 지출에 도움이 된다는 게 약사계의 주장이지만, 의료계는 복제약품(제네릭)과 오리지널약품이 약효 차이를 가질 수 있는 만큼 환자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반박한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활성화는 부실한 약제 생동성 시험을 거쳐 나온 제네릭 의약품을 약사가 무분별하게 처방 가능하도록 빗장을 여는 것”이라며 “환자와 국민에게 심각한 위협을 끼칠 악법이다”라고 피력했다. 이어 “동일 성분의 의약품이라도 제품에 따라 임상 효과나 부작용이 다르고 환자별 복약 순응도도 차이를 보인다”면서 “의사는 환자의 건강 상태와 유전적, 환경적 요소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의약품의 효능을 살피고 조절해 처방을 내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분명 처방 및 대체조제 문제는 진료 후 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업무와 처방된 약물을 제공하는 약사의 업무를 양분한 2000년 의약분업 이후 20년 넘게 이어져온 해묵은 논쟁거리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활발히 논의됐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관련 법안들이 모두 폐기됐다. 야당은 대체조제 활성화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당 서영석 의원은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관련 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민주당 민생경제회복단은 22일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소아 필수약 품절 문제 해소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제5차 민생경제회복단 현장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민필기 약사회 부회장은 “(의약품 부족 문제는) 단순히 민간 제약사에 맡겨 놓을 문제가 아니다”라며 “현행 약사법은 수급 불안정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의약품의 긴급 생산, 수입, 유통 개선 조치 등에 대한 법적 근거와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급 불안정 의약품에 대한 심평원 의약품안전사용시스템(DUR) 알림 탑재, 과다 장기처방 자제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라며 “대체조제, 성분명 처방 등 행정적 부분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고 개선해 달라”고 부연했다.
약계는 최근 인플루엔자 대유행으로 의약품 확보 문제가 중요해진 만큼 대체조제 활성화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번 국회에서도 법안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소식에 정통한 의약계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직능단체 중에서 약사회만 찬성하고 나머지는 다 반대하는 상황에서 법안 통과는 어려울 것”이라며 “복지부가 대체조제 통보 방식으로 DUR 대신 심평원 업무포털을 고수하며 맞서는 터라 국회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