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의약품, 천식 치료제 등 국가필수의약품 품절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관리종합정보포털에 따르면 정부에서 의약품 수급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품목 1741개 중 재고 수준이 5% 이하인 품목은 896개에 달한다. 그 외의 품목도 대부분 재고 수준이 50% 미만인 것으로 확인됐다.
의약품 부족 현상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지난 1월 대한약사회가 의약품 수급 불안정 동향을 파악한 결과, 전국 약국의 97%에서 수급이 어려운 품목이 3개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수급이 시급한 품목은 코감기약인 ‘슈도에페드린’ 제제였다.
퇴장방지의약품(이하 퇴방약)도 공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 퇴방약 중에서 최근 3년간 생산 또는 수입이 중단된 의약품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 46개다. 퇴방약은 정부가 지정·관리한다. 환자 진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채산성이 없어 생산이나 수입을 기피하는 약제가 해당된다.
소아약 품절은 해를 넘겨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대한아동병원협회가 44개 아동병원을 대상으로 필수의약품 수급 상황을 살폈더니 △뇌전증 발작 억제 유지약 △터너증후군 치료제 △성조숙증 치료주사약 △소아 천식 흡입치료제 등 141개 필수의약품이 짧게는 2주, 길게는 1년 이상 ‘수시 품절’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소아 천식 치료제인 ‘풀미칸’과 ‘풀미코트’의 공급 불안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약가를 소폭 인상하고 약국마다 수량을 한정해 균등 공급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5월 품절 입고 약품 신청 목록에 풀미칸이 포함되는 등 약국들은 여전히 재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있는 건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A씨는 “요즘 4~5세 소아 폐렴 환자가 늘면서 기관지 확장제를 많이 쓰고 있는데 공급 문제가 자주 불거진다”며 “약국들은 언제 약을 구할 수 있을지 몰라 물량이 있으면 손해를 감수하면서 쟁여 두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등 국제 정세 악화 등에 따라 의약품 원료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의약품 부족 문제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완제의약품 자급도는 68.7%이다. 반면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11.9%에 불과하다. 원료의약품 수입 규모는 24억3000만달러(한화 약 3조1888억원)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가장 많은 원료의약품을 들여오는 국가는 중국으로, 2022년 한 해에만 9억1000만달러(약 1조1943억원) 규모를 수입했다.
의약품 약가 인하 정책으로 인해 제약사들은 수요가 적은 의약품 생산을 부득이하게 줄이고 있다. 제조 원가는 계속 오르는데 약가가 낮아지면 수익성이 떨어진다. 제약사가 의약품 공급을 접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아·중증환자 등에 사용되는 필수의약품은 국가가 나서 제약사 생산을 의무화하거나, 채산성 개선을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린이병원 원장인 B씨는 “의약품 수급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채산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건강보험 재정이 아닌 별도의 재원을 마련해 필수의약품 생산·공급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수급 불안정 의약품 관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복지부는 정부 협조로 생산량을 늘렸거나 감염병 치료에 사용된 품목 중 사용량·약가 연동제 협상 대상으로 선정된 약제는 의약품 수급 해소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 약가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