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 KDDX 사업방식 ‘장고 끝에 악수’? [박진호의 아웃사이트]

방사청, KDDX 사업방식 ‘장고 끝에 악수’? [박진호의 아웃사이트]

‘공동투자(정부+업체)’로 ‘공동상세설계’ 추진 ‘K-함정’ 수출 경쟁력 강화

기사승인 2025-02-06 16:38:25 업데이트 2025-02-06 17:02:42

해외 먹거리 창출 없이는 ‘K-방산’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개발된 ‘지상무기체계’ 뿐만 아니라 ‘해상무기체계’에 대해서도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주목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0조원 규모에 달하는 호주 호위함 사업 수주 도전에 국내 업체가 실패한 것은 ‘K-함정’ 경쟁력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한 뼈아픈 경험이었다. 그런데, 국내 업체들이 캐나다, 폴란드, 사우디 등에 100조원 규모의 잠수함 건조 등을 포함한 수출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K-함정’ 앞에 또 다른 먹구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함정 건조 및 유지보수를 위한 한미간 새로운 협력의 중요성이 언급되었다. 또한,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 전례가 없는 엄청난 규모의 함정 사업들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K-함정’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방사청은 선제적인 맞춤형 정책지원을 마련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업체는 발을 동동 구르고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방사청은 한국형차기구축함(KDDX) 사업추진방식에 대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고 있지만 그 결정은 1년 가까이 지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만간 예정된 최종 결정이 통상의 사업 관행을 준용하는 수준에 그쳐 ‘K-함정‘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새로운 정책적 전기를 바라는 국민적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할 경우 방위사업청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두었다‘는 국민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될 수 있다.

방산업체 지정 권한을 행사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함정의 후속함 발주시 업체 간 경쟁입찰을 추진하기 위해서 복수의 방산업체를 지정하는 함정 사업의 통상적인 관례를 전향적으로 탈피하여 한국형차기구축함 사업의 경우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착수 이전에 이례적으로 복수업체를 방산업체로 최근 지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이번 결정은 방위사업청이 사업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는 ’공동상세설계 및 동시분할건조‘ 방식을 추진하는데 있어 선제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정책적 빗장을 우선 풀어준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업체 간 국내사업 수주를 위한 출혈경쟁을 지양시키고 ‘K-함정’의 해외진출을 촉진시키기 위한 정책적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글로벌 해양 방산 경쟁에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전통적인 해양 강국뿐만 아니라 일본까지도 참여하고 있어, 국내 방산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간적 여유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방위사업청이 공동상세설계 방안을 추진하기 위해선 2020년 3월 제정된 ‘국방과학기술혁신 촉진법 제8조 및 제10조’ 등을 근거로 정부와 업체가 공동으로 투자하여 복수의 업체가 공동으로 상세설계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선 업체가 정부와 공동으로 소유권과 실시권을 행사하는 ‘협약 방식의 계약’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 오늘날 방산 강국의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지식재산권을 소유하고 보다 자유롭게 그 권한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과학기술혁신 촉진법’의 제정 취지는 국방과학 기술 혁신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업체와 공동으로 투자하여 국내 연구개발 사업(함정의 경우는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가 연구개발 범위에 해당됨)을 추진할 경우 국내 업체들의 기술 혁신을 보다 자유롭게 유도하고, 업체는 지식재산권의 보다 자유로운 행사를 통해서 글로벌 수출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다고 확신해 일부 지상무기체계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바 있다.

한국형차기구축함 사업추진방식 뿐만 아니라 ‘K-방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정부와 업체가 공동으로 투자해 연구개발하는 사업방식을 방위력개선사업 전반에 걸쳐서 대폭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국내 방산 기업들이 더 이상 우물안의 개구리로 머물러선 안되고, 정부의 보호 아래 성장하는 것은 기술 혁신의 한계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최강 군사대국인 미국의 경우 이미 1980년대 ‘바이돌법(Bayh-Dole Act)’ 제정을 통해서 정부 소유의 지식재산권을 업체로 전환시켰고 그 결과 민간 업체와 연구기관들의 기술 혁신이 봇물처럼 진행되었다. 1970년대 미국 대학들이 보유한 방산분야에 적용 가능한 기술 특허 개수가 300여개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에는 3000여건으로 급증했다. 이처럼, 방위사업청이 공동투자 연구개발 방식을 국내 사업에 전방위적으로 확대할 경우 국내 방산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을 비롯한 민간 연구기관과 기업의 상생협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될 것이 자명하다. 

정부가 지식재산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해외 수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수출을 위해선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재산권 실시 등을 위한 기술료를 지급해야 하고 이로 인해 과도하게 진행되는 불필요한 행정적 절차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국산 무기체계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가격 경쟁력이다. 국내 업체가 해외 구매국과 가격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방위사업청은 직간접으로 관여하여 한시적인 기술료 면제 등을 제시하면서 업체의 가격 인하를 제안했던 것이 수출 성사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미 국내에서 개발된 무기체계를 수출 할 경우에도 구매국의 요청에 따른 개조개발은 필연적이다. 한시적으로 기술료가 면제되더라도, 개조개발의 범위까지 기술료가 면제되지 않아 결국 업체가 재정적 손실을 감당하는 황당한 사례가 발생한 사례도 있다.

한국형차기구축함의 상세설계를 공동투자 형태로 복수의 업체가 참여하는 공동설계를 추진할 경우 초래될 수 있는 사업리스크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 복수의 업체가 공동으로 설계하기 위해서 정부와 함께 공동으로 투자할 경우 정부가 업체 간 협력을 강제할 수 없고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인데 경쟁 관계에 있는 업체들이 원활한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다. 그러나, 이러한 리스크는 이번 사업의 특성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상세설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선체 설계뿐만 아니라 과거 함정 사업 추진을 통해 축적된 사업 전문성과 노하우가 사실상 부재한 한국형이지스전투체계, 통합전기식(전(全)전기)추진체계, 스텔스성능 향상(통합마스트 적용), 추진전동기 등 도전적 핵심기술 및 장비의 개발, 적용, 통합, 연동 등이 핵심적으로 관리해야 할 사업리스크에 속한다. 다시 말해, 현재 경쟁을 벌이고 있는 업체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협력하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사업 추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방위사업청은 한국형차기구축함 사업추진방식 결정을 앞두고 업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데 기업의 이윤 창출 측면에서 후속함 건조를 단순히 양분화 시키는 결정은 현재는 보이지 않는 상당한 기회비용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지양해야 할 정책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호주 호위함 사업 수주 실패의 교훈을 되새기고 향후 잠수함 사업 수주 가능성을 배가시키기 위해선 ‘설계 능력 고도화 및 첨단화’, ‘체계 연동 및 통합 기술적 난이도 극복’, ‘선체 건조’ 등의 3박자가 완벽히 조화돼야 하기 때문에 이번 한국형차기구축함 사업추진방식이 국내외적으로 새로운 ‘K-함정’ 시대를 개척하는데 있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마중물을 붓는 주체는 방위사업청이지 업체가 아니다. 

박진호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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