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10분만 늦었어도 운명이 달라졌다 [계엄 해제, 두 번의 기적은 없다③]

그날 10분만 늦었어도 운명이 달라졌다 [계엄 해제, 두 번의 기적은 없다③]

국회, 계엄 대비 교육 ‘0건’…국회사무처 “교육·매뉴얼 제작 검토 중”
“국가중요시설 종사자에 한해서라도 교육 제공해야”
해외선 계엄·전시·보안시설 관련 정보 교육 실시

기사승인 2025-03-06 13:00:04
국회의사당. 곽경근 대기자

그날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가 10분만 늦었어도 국회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국가중요시설의 위기 대응 속도가 비상상황의 향방을 결정짓는 만큼, 국회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28분부터 비상계엄 해제가 의결된 4일 오전 1시3분까지 약 3시간 동안 다수의 국회 당직자, 보좌진들은 당장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모여야 할지 몰라 큰 혼란을 겪었다. ‘국회 안전 확보’가 의무인 국회 경비대가 문을 봉쇄하고, 의원들의 표결을 방해하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보좌진 선배의 지시에 따랐다는 박성준 의원실의 유다현 비서관은 “두 번의 위헌적 계엄은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만약을 대비한 최소한의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대응할 수 없어 무력감이 컸다”고 토로했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16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16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0분 차이로 계엄을 겨우 막았다”며 계엄 등 비상상황이 결국 ‘시간 싸움’에 달렸다는 취지로 말했다. 민주당이 지난 16일 공개한 지난해 12월4일 국회 폐쇄회로TV(CCTV) 영상에 따르면, 계엄군이 본관 지하 1층의 전력을 차단한 시점은 오전 1시6분이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시점과 불과 5분 차이다. 계엄군이 조금만 일찍 본회의장 전력까지 차단했다면, 계엄 해제가 무산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박 의원은 “지난 7월부터 계엄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계엄 선포 시 곧바로 국회에 모여 이를 해제해야 한다’는 점을 의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지시켰다”고 강조했다.

비상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처하려면 평소 반복된 교육을 통해 대응 매뉴얼이 몸에 익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국회의원들의 월담을 도왔던 송은현 조국혁신당 주임은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교육을 받아 매뉴얼을 숙지했으면 위급 상황 시 주변에 해당 내용을 공유하며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보좌진도 “계엄군과 대치하다 부상을 입었을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며 “국회 구조도나 응급처치법 등을 교육 받았다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 의견 역시 다르지 않다. 박상병 인하대학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달 11일 “평소 비상상황 대비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결정 속도와 행동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젊은 보좌진들이 이번 계엄 사태에서 즉각적인 대처가 어려웠던 이유는 계엄 관련 경험이나 교육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국가중요시설 종사자에 한해서라도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해 대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1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유희태 기자

국회, 계엄 대비 교육 ‘0건’…국회사무처 “교육·매뉴얼 제작 검토 중”

이번 계엄 사태로 국회의 빠른 대응이 다른 기관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주목받았다. 계엄 해제 요구권을 가진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국가중요시설 최상등급인 ‘가급’에 속하는 국회 기능이 마비될 경우 국가안보와 국민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모두가 체감했다. 당시 국회 출입이 통제되면서 일부 의원들이 국회 경내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것이 계엄 해제 결의안 표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계엄 해제 결의안에 참석한 국회의원은 전체 300명 중 190명에 그쳤다.

과거 여러 차례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경험했음에도, 국회에서 이를 대비한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사무처가 지난해 12월23일 서미화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국회에서 계엄 관련 교육이 시행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국회는 비상상황에 대한 역량 강화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지난달 7일 본지에 “유사 시 국회 기능이 차질 없이 유지될 수 있도록 비상상황 대응 교육이나 매뉴얼 제작 등 건설적인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속한 대응뿐 아니라 군사 관련 정보의 격차를 교육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군사 교육과 훈련을 받은 일부 군 복무자들은 특정 부대가 투입된다는 소식만 듣고도 상황의 심각성을 빠르게 이해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계엄군 병력이나 부대 명칭, 작전 방식이 언급될 때마다 정보를 해석하고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20대 비서관은 “최소한 군사 조직 체계와 계엄 시 대응 원칙을 숙지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라며 “불필요한 혼선을 줄이고 빠르게 비상상황에 대응하려면, 어떤 부대가 어디에 투입된다는 소식을 어떻게 해석할지 아는 것과 군사 작전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피력했다.

쿠키뉴스가 지난 1월14일 김한규 의원실을 통해 국회 입법조사처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에 군 복무자 이외의 국민을 대상으로 정보 교육을 담당하는 별도 부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군사 관련 정보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정기적인 교육이 언급됐다. 박상병 교수는 “계엄 선포 시 대응 절차에 대한 정보 교육이 있었다면, 불필요한 혼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원하는 이들에 한해 교육받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해외 일부 국가에선 정부가 체계적인 비상상황 교육을 주도하며 운영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스웨덴은 국방부 산하 ‘민간 위기청’이 가정마다 브로슈어를 배포해 전쟁과 위기 상황 시 필요한 기본 지식과 대처 요령을 숙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당 브로슈어에는 사이버 안보, 긴급 물자, 통신 수단, 피난처 등 필수 정보가 포함돼 있다. 프랑스와 핀란드는 희망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계엄·전시·보안시설 관련 지식 습득 과정을 제공하며, 정부 차원에서 국민의 위기 대응 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날 밤 이후, 변화 조짐…“국회도 헌법·계엄법 교육 강화해야”

국내에서도 이미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국회뿐 아니라 누구나 계엄 등 비상상황에 기본적인 대응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범국가적 교육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황인성 기획총괄심의관은 지난해 12월9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법원에는 전시 상황에 대한 매뉴얼은 있었으나, 비상계엄 대응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신속한 대응 체계가 필요함을 인식했다”고 밝혔다.

전남도교육청은 ‘계엄령 역사’ 및 ‘헌법 읽기’ 자료를 각급 학교에 보급할 예정이다. 계엄령 역사 자료는 1948년 여수·순천 10·19 사건부터 1980년 5·18 민주화운동까지 주요 비상계엄 사례와 시민 저항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헌법 읽기 자료에는 헌법 제1조와 제77조를 중심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설명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헌법 교육 전문가를 초청해 교직원 연수도 진행할 계획이다.

경찰과 군인이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 헌법·계엄법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같은 내용의 ‘경찰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달 26일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계엄이 끝난 이후 군 지휘관들이 ‘계엄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계엄 상황에서 국회 활동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을 잘 몰랐다’고 주장한 점이 매우 충격적이었다”며 “이런 기본적인 법적 개념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국회를 지켜야 할 경비대마저 상부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헌법적 원칙을 부정한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기적인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며 “군경은 물론 국회 같은 국가중요시설 종사자들도 헌법과 계엄법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숙지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날로부터 3달이 지났다. 국회 관계자들은 지난해 12월4일 새벽 국회에서 계엄 해제안이 153분 만에 의결된 일을 ‘기적’이라 돌아본다. 당시 국회 내부의 대응이 체계적이지 못했다는 의미다. 국가중요시설인 국회는 계엄과 전시 등 비상상황에서 또다시 가장 먼저 타격받을 위험이 크다. 기적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더 안전한 국회를 만들려면 어떤 대비책이 필요할까. 쿠키뉴스가 당시 국회에서 비상계엄을 경험한 국회의원, 국회 보좌진, 당직자들의 증언을 모아 3편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최은희 기자, 김은빈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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