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버티는 중증외상, 새 기틀 다져야 [데스크 창]

오늘도 버티는 중증외상, 새 기틀 다져야 [데스크 창]

기사승인 2025-03-06 09:30:39
김성일 건강생활부장
“당황했다. 또 실망스러웠다.”

오종건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장은 최근 재정 지원이 끊겨 수련센터 운영이 중단될 것이란 소식을 접한 뒤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수련센터는 11년간 중증외상 전문의를 전문적으로 육성한 국내 유일한 기관이다. 이곳에서 수련을 마친 전문의들은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큰 몫을 해왔다. 

중증외상 전문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빠른 판단과 치료를 시행해야 하다 보니 전문성이 높다. 환자를 위해선 꼭 필요한 존재지만 현재 활동하는 인원은 소수에 그친다. 흉부외과, 정형외과 등의 전문 과정을 수료한 뒤, 이 일을 해보겠다고 작심한 이들이 추가로 2년 동안 교육을 받아 자격을 갖는다. 오 수련센터장이 이끄는 수련센터는 인력을 꾸준히 배출하면서 필수의료 시스템을 뒷받침했다.

서울시가 재난관리기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수련센터는 중단 위기를 모면했지만 실질적 대안이 없는 상황은 변함이 없다. 당장 내년에 운영이 지속될 수 있을지도 확언하기 어렵다. 언제든 예산이 끊기면 수련센터는 사라진다. 특히 의료공백이 1년 이상 지속되면서 전반적 진료·치료 여건이 위축된 상태다. 안 그래도 빠듯한 응급의료체계 속에서 중증외상 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중증외상 분야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권역외상센터가 마취과 의료진이 부족해 응급수술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자 정부가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이 당직 근무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3년 국립중앙의료원을 서울권역외상센터 운영기관으로 지정했는데, 이후 의료원은 외상센터 전담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를 별도로 두지 않았다. 대신 의료원 소속 마취통증의학과 의사 6명이 지원 근무를 섰다. 복지부는 외상센터 마취 전담 전문의를 신규 채용하겠다고 했다.

권역외상센터의 인력난은 일부에 그치지 않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이 전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지정돼 운영 중인 17곳 가운데 9곳은 전문의 수가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목포한국병원의 경우 지난 2017년 12명에서 올해 5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원주기독병원은 14명에서 8명으로, 원광대병원은 10명에서 4명으로 감소했다. 업무 강도가 높아 이탈이 잇따르고, 남은 의료진은 휴일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그려지고 있다. 

중증외상은 매년 10만 건 이상 발생한다. 다만 병원 입장에선 수술·입원 시간이 긴 중증외상 수술은 돈이 되지 않는다. ‘외상 수술을 하면 적자가 난다’는 말이 도는 이유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단순히 수가를 올리는 것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계획한 ‘전문의 중심’ 진료체제를 구축하려면 전문의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소수라서 벅찬 일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지향하며 단계적 증원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중증외상 최종 치료 인프라를 확보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환자의 치료를 운에 맡겨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중증외상 분야의 기틀을 다져나갈 때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김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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