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61)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61) 

보흐 남매는 반 고흐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흔적을 남긴다

기사승인 2025-03-24 10:24:42 업데이트 2025-03-24 10:37:37
빈센트 반 고흐, 외젠 보흐(Eugene Boch,1855-1941), 1888년9월, 캔버스에 유채, 60.3×45.4cm, 오르세 미술관​

반 고흐는 ‘아를의 푸른 밤에 빛나는 흰 별’을 물감튜브에서 바로 짠 뒤, 초상화 <외젠 보흐>를 완성했다.

"머리 뒤로는 방을 나타내는 지루한 벽 대신에 무한함을 그릴 거야.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풍부하고 가장 강렬한 파란색으로 칠한 단순한 배경을 만들 거야. 거기에 풍부한 푸른색 배경과 밝은 금발 머리의 단순한 조화로 신비로운 효과를 낼 거야. 푸른 하늘의 별처럼 말이야." 반 고흐가 1888년 8월 18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다.

​그림에서 보흐는 금발이라기 보다 갈색에 가깝고, 수염과 재킷의 노란색은 짙은 청색 배경에서 보색으로 도드라지며, 별들은 헤일로(halo, 후광)처럼 빛을 발한다. 아래 그의 사진은 지적이며 따스한 인간미를 갖춘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반 고흐의 초상화는 홀쭉하다 못해 비쩍 마른 뺨과 형형한 눈빛으로 강퍅한 사람이란 느낌이 더 강하다. 

벨기에 화가 외젠 보흐 

보흐는 독일의 유명 도자기 회사인 빌레로이앤보흐(Villeroy & Boch) 설립자의 5대손이다. 주철 공장을 운영하며 포탄을 만들기 위해 폭발실험을 하던 장 프랑수와 보흐는 아들들이 안전한 일을 하면 좋겠다는 뜻에서 1748년 도자기 회사를 세웠다. 이후 빌레로이의 딸과 보흐의 아들이 결혼하며 합병되고 빌레로이 앤 보흐가 되었다. 

이 회사는 277년 전통을 이어오며 명망 있는 가문을 위해 디자인을 해왔다. 5년간 퀼른 대성당의 바닥 타일 공사, 타이타닉 호, 다이애나와 찰스의 테이블 웨어, 20세기에는 교황이 선출될 때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선 보였다. 

보흐와 근처 퐁비에유에서 작업을 하던 미국 화가 도지 맥나이트(1860~1950)는 반 고흐를 만나러 왔다. 맥나이트는 보흐에게 파리 코르몽 화실에서 만난 반 고흐가 ‘괴짜이지만 놀라운 인물로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논의하며 친구가 되었다.

“나는 위대한 꿈을 꾸고 나이팅게일이 노래하듯 일하는 예술가 친구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좋아.” 테오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에서 언급할 정도였다. 그리곤 이 초상화를 자랑스럽게 가지고 다녔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반 고흐의 방, 1888년10월, 72.4cm x 91.3cm, 반 고흐 미술관

반 고흐는 아를에 있는 노란 집, 자신의 침실을 세 번 그렸다. 가장 먼저 그린 작품은 반 고흐 미술관에 있으나, 안타깝게도 그가 생 레미(Saint Remy) 프로방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론 강의 홍수로 작품에 습기가 차 손상을 입었다. 홍수가 집에서 돌 하나 던지면 닿을 정도까지 밀려왔고,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가 없는 동안 난방을 하지 않아 집에 돌아왔을 때 물과 소금기가 배어 있었다. 그래서 그림의 주황색 타일에 초록색 곰팡이가 피어났다. 

그러므로 반 고흐는 정신병원에 있는 동안 2장의 레플리카(replica, 원작자가 만든 사본)를 만들었다. 같은 크기의 것은 시카고 미술관에, 가족들에게 주기 위한 약간 작은 크기의 것은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 중이다. 

이들 세 작품을 구별하는 방법은 벽에 걸린 두 장의 초상화이다. 반 고흐 미술관에는 아를에서 만난 외젠 보흐와 이탈리아 군인 외젠 밀리에의 초상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반 고흐의 방, 1889, 캔버스에 오일, 57.3x73.5cm, 오르세 미술관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오르세 본에는 벽에 반 고흐의 자화상과 여동생 윌레미나의 초상화가 보인다. 시카고 미술관 소장작은 벽에 걸린 초상이 누구인지 모른다.

반 고흐는 이 그림들을 정신병원에서 강제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데 대한 일종의 복수로 그렸다. 구상이 아주 단순한 그림인 만큼, 그림자나 미묘한 음영은 무시하고, 일본 판화처럼 환하고 명암이 없는 색조로 채색했다. 이 그림은 <타라스콩의 합승마차>나 <밤의 카페>와 좋은 대조를 이룰 것이라며, 언젠가는 테오를 위해 다른 방도 스케치할 생각이라 밝혔다. 

옅은 라일락색 벽, 깨지고 퇴색된 붉은색 바닥, 크롬 노란색 의자와 침대, 매우 옅은 라임색 베개와 시트, 피 같은 붉은색 담요, 주황색 화장대, 파란색 변기, 녹색 창문을 사용했다. 색채의 상징주의를 보여주는 모든 다양한 톤을 통해 반 고흐는 ‘절대적인 휴식’을 표현하고 싶었다. 

벽과 문이 연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변색된 상태이며 반 고흐 미술관의 첫 번째 그림에는 바닥도 화장대처럼 주황색이었으나 옅어지고 곰팡이가 생겼다.

반 고흐 편지엔 “옅은 라일락색 벽”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세 곳의 작품은 모두 파란색이다. 반 고흐는 파리 시절 이후 어디를 가나 단골이던 몽마르트르의 마음씨 좋은 탕기 영감에게 물감을 구입했다. 그런데 탕기 영감이 파는 물감 품질이 떨어져 세월이 흐르며 파랗게 변색되었다. 

“난 침실 그림이 아주 좋아. 그 강렬한 색채를 보면 마치 꽃다발을 보는 것 같아.” 테오는 밀밭 그림과 침실 그림 두 점이 포함된 소포를 받고 1889년 12월 22일에 이런 감상을 형에게 보냈다.

영국에서 현존하는 화가 중 최고의 그림 값을 자랑하는 데이비드 호크니는 “반 고흐는 미국의 평범한 모텔을 그리라고 해도 매일 다른 색채로 그려낼 거다”라 말하며 그의 색에 대한 열정을 표현했다. 반 고흐는 컬러리스트다.

1900년 이전에 촬영된 벨기에 화가 안나 보흐, 출처: 위키피디아

1890년 1월 18일 매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레 뱅(Les XX 20인전, 1890)에 그의 유화 6점이 전시되었다. 권위 있는 평론가 알베르 오리에르의 지극히 호의 적인 평론 '고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르 메리 르퀴르 드 프랑스>에 실렸다. 

이곳에 전시된 반 고흐의 <붉은 포도밭>을 외젠의 누나인 인상주의 화가 안나가 400프랑에 구입했다. 이 남매는 이렇게 반 고흐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는 반 고흐가 살아 생전에 판매한 유일한 유화라는 신화로 알려졌다. <다음 편에 계속>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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