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증원 전 수준인 3058명으로 확정했지만, 의료계는 정원 외엔 변한 게 없다며 미온적인 모습이다. 의대생들은 수업 거부를 지속하며 버티고 있다. 이번엔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두고 갈등이 커질 조짐이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오는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개원의, 전공의, 의대생 등이 참여하는 전국의사궐기대회를 열고 필수의료 패키지 철회,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해체 등 의료개혁 백지화를 요구할 예정이다. 의대 정원 증원 중단에 이어 정부의 완전한 백기 투항을 이끌어내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의료계는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되돌리는 방안에 대해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필수의료 패키지 등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에 대한 근본적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의대 정원은 무조건적인 확대가 아닌, 의료 현실과 수요를 반영해 감축 조정돼야 한다”며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등 의료개악 정책 역시 근본적 재설계가 요구되며, 이번 사태의 마무리 역시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대생들의 유급 시한 유예도 요구했다. 서울시의사회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24·25·26학번이 동시에 1학년 교육을 받게 되는 ‘트리플링’ 사태가 발생해 의학교육의 질적 붕괴가 우려된다”면서 “지금은 유급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안정적 회복을 위한 유예 조치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대학과 정부가 올해는 학칙에 따라 학사유연화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집단 유급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지만 의대생들은 요지부동이다.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교육부의 의대 정원 원점 회귀 결정에도 공식 입장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의협은 의대생들이 결정할 일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의대생들이 피해 보지 않기를 바라지만 전적으로 판단은 본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의대생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내년도 모집인원 동결만 믿고 수업에 복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역 의대 본과 2학년 A학생은 “정부가 내년도 의대 정원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단순히 숫자의 조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배제된 의료계와의 신뢰 회복을 원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물러서는 반면 의대생과 전공의는 꿈쩍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는 걸 두고 의료계 내부에선 반성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대한민국의 의료는 망해가고 있지만, 정부만 잘못을 한 건지는 의료계가 돌아봐야 한다”라며 “우리가 의료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판단을 내려야 할 때다”라고 제언했다.
의대 학장들은 학생들이 수업에 복귀하지 않으면 학칙에 따라 예외 없이 유급이 결정될 것이라며 수업 참여를 촉구했다. 40개 의대 학장들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KAMC)는 “의대 학사 정상화라는 정부의 목표는 확고하며 이는 새 정부 출범과 무관함을 인식해야 한다”며 “정치적 상황이 여러분에게 학사유연화 등의 여지를 열어줄 수 있다는 판단은 정확하지 않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해진 수업 참여 기한을 넘겨 후배의 미래와 의사 양성 시스템에 어려움을 주지 않도록 모두 숙고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