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그림은 빈센트가 가진 일본에 대한 이미지다.
빈센트는 프랑스 잡지 <파리 일러스트레> 표지에 실린 그림을 모사해 이 작품을 완성했다. 직사각형 모양은 원본 그대로이고, 바탕엔 노란색을 칠해 검은 기모노를 입은 여자를 매우 강조하였다. 초록과 빨강의 보색대비는 역시 오이란을 돋보이게 한다. 그는 히로시게 그림에 나오는 꽃가지 대신 다른 우키요에의 대나무가 있는 정원을 그렸다.
오이란(花魁)은 연회에서 노래와 춤으로 흥을 돋우는 일을 하는 일본의 기녀(妓女)인 게이샤나 견습 게이샤인 마이코와 달리 유곽에서 매춘을 하는 여성이다. 고급 오이란일수록 가발이 크고 화려하며, 열 개도 넘는 비녀를 꽂는다. 공식적인 자리일수록 금색이나 검은색 기모노를 입고 화려함을 뽐낸다. 극동에만 사는 학은 프랑스어로 그루(Grue)이고, 매춘부의 별칭이기에 동음이의어로 사용했다. 개구리 역시 매춘부의 상징이며, 우타가와 요시마루의 작품에서 차용하였다.
‘근심스럽고 걱정으로 가득 찬 덧없는 세상’이라는 뜻인 ‘우세(憂世)’와 누구나 잠시 머물다 가는 세상인 ‘우키요(浮世, 부세)’는 같은 소리에 다른 뜻이다. 우키요에(浮世絵)란 거기에 그림이 붙어 생노병사와 현세의 오욕칠정을 그린 그림이란 의미다. 우키요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에서 에도(江戶: 동경의 옛 이름, 1600~1867) 시대에 유행한 일본의 민중 미술이다.
그래서 우키요에는 여인, 가부키 배우, 명소 풍경 등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주제를 목판화로 제작하였다. 싼 가격에 대량 생산이 가능하니 서민층과 신흥상인층이 주로 구입하였다.
1853년 일본이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개항하였고, 170년 만에 다시 문호가 열렸다. 그로부터 위대한 작가나 화가들은 일본을 방문한 뒤, 가느다랗고 왜소한 일본 여자의 몸에, 그들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국적인 꽃으로 장식된 기모노를 입혔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5)는 1907년 일본, 중국여행기를 발간하며 이렇게 인상을 전한다.
“일본은 뭇나라들의 게이샤였다. 쾌락과 신비가 가득한 이 나라는 먼 바다를 향하여 끊임없이 웃음을 지었다. 마르코 폴로는 이 나라를 <지팡구>라 불렀으며, 아름답고 쾌락을 즐기며 황금이 가득한 나라라 전했다. 일본은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의 전통 예능 기생인 게이샤(藝者)는 오달리스크처럼 유럽 남성들에게 환상의 탄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게이샤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프랑스 예술계에 큰 반향을 남기게 된다. 지금도 게이샤 본드(Geisha bond)라 하면 일본에서 달러로 발행되는 채권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키요에는 어떻게 유럽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15~17세기 명나라 중반 중국 도자기의 메카인 경덕진(景德鎭)에 관요(官窯) 어기창이 설치되었다. 그러자 청화백자뿐 아니라 납을 주성분으로 하는 오채(五彩)안료를 사용한 색색의 그릇들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을 비롯하여 아프리카까지 수출되었다. 그리하여 1522~66년 전성기의 중국 요업인구는 50만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17세기 명말. 청초의 변혁기에는 민요(民窯)가 유럽에 도자기 수출을 담당하게 되었다. 경덕진을 비롯한 복건성의 덕화요와 장주요를 중심으로 한 도자기 제조자들은 수입국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그릇을 생산하였다. 그 때의 상황은 스페인 예수회 신부인 프란시스코 하비에르(Francois Xavier, 1662~1741)가 상세히 보고한 서한으로 밝혀졌다.
하비에르는 싱가포르에서 선교를 하였고, 일본에선 에도 막부의 강력한 탄압에 부딪혔다. 이후 중국 선교를 위해 준비하던, 하비에르는 그 뜻을 다 펴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1552년 46세의 젊은 나이로 광동성 앞의 한 섬에서 선종(善終)하였다.
일본 막부의 무지막지한 천주교 탄압을 소재로 한 영화 <사일런스(침묵), 2016>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마틴 스콜세지는 ‘인간에게 종교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현대 종교 소설 중 명작으로 평가받는 엔도 슈사쿠가 1966년에 발간한 <침묵>을 영화화한 것이다.
작가는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에서 “우리는 순교한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배교한 사람들을 경멸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배신했을 지 모르니까요.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탄식과 피가 흘렀는데도 왜 신은 침묵했을까 하는 ‘신의 침묵’을 겹쳐 놓았습니다.”라 말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권을 잡고 난 후, 가톨릭으로 전향한 일부 다이묘(大名)들이서양과의 교역으로 세력을 키워 자신에게 대항하게 될까 우려하였다. 이에 선교사 추방령을 내리고, 1597년 나가사키에서 카톨릭 신자들을 집단 처형하며 시작한 천주교 박해가 영화의 배경이다. 잔혹한 박해뿐만 아니라 파견되었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활동, 신앙을 지키기 위한 일본 천주교도의 희생 그리고 수많은 고통과 번민 끝에 신앙을 버린 배교자들의 모습 등을 조명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수십 년 전 대학 때 읽은 일본 가톨릭 수난사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이기에 믿고 끝까지 볼 수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의 대가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여주인과 하녀>에 고아(Goa)에서 온 상자인 함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보석과 편지를 보관할 수 있는 함은 지도처럼 외부세계에서 가져온 소식과 문물을 의미한다.

선종 후 싱가포르에 있던 하비에르 성인의 유해는 인도 서부의 해안도시 올드 고아(Old Goa)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봉 지저스 대성당에 안치하였다. 포르투갈은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유해를 고아로 가져와 그곳을 제2의 리스본으로 만들려 했다. 그 시절 인구 20만의 대도시에 성당만 60곳을 지어 놓아,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신기하게도 473년간 성인의 시신은 썩지 않고 있으며, 그 기적을 보이기 위해 지금도 10년마다 시신을 공개하는 대대적인 행사가 열린다. 혹자는 방부처리를 해서 ‘미이라로 만들었으니 당연히 썩지 않고 있다’라는 의심을 제기하지만, 신앙과 과학은 아직도 별개의 영역이다.
하비에르 성인은 17세기 루벤스의 그림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기적>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작품의 특이점으로 꼽는 것은 그림 속에 도포를 입은 조선인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노란 도포를 입은 조선인이 단상의 하비에르가 죽은 이를 살리는 기적을 보고 놀라 흰자위가 많이 드러난다. 임진왜란 때 잡혀간 조선인이 일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자, 신기해 하며 그를 유럽으로 데리고 왔다. 루벤스는 1617년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군중 속에 이 조선인을 넣은 것이다.
이렇게 하비에르와 예수회 신부들이 아시아에서 선교 활동하던 시기에 중국과 조선의 제작 기술을 유입한 일본에서도 도자기가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중국이 명, 청교체기의 혼란과 해금령 등으로 수출이 주춤한 사이 동인도회사를 통해 중국을 대신하여 유럽으로 청화백자와 오채자기를 수출하였다. 도자기 포장 시 사이사이에 넣는 완충제로 유럽에 들어온 우키요에는 생선가게나 정육점의 포장지로 사용되어 모네의 눈에 띄었다.
18세기 중엽 이후 일본의 짧은 정형시 하이쿠(俳句) 동호인들이 선물용 달력에 우끼요에를 사용하였다. 우끼요에에 하이쿠를 적은 시화(詩畵)는 유행처럼 퍼졌고, 에도 시대 말기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십여 년 전 권옥연 화백의 전시회가 있었다. 일본에서 공부한 화가의 초기작 중 서양화에 하이쿠를 써 놓아 무척 이색적이었지만 그런대로 잘 어울려 시를 읽으며 천천히 감상하는 시간을 보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이쿠는 5, 7, 5 열 일곱 자로 된 정형시이다. 빈센트의 <오이란>에 어울리는 바쇼의 하이쿠 두 편을 소개한다.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장맛비 내려
학의 다리가 짧아졌어라!"
생략과 여백으로 긴 여운을 주는 시가 하이쿠다. 한때 하이쿠에 매료되어 시인 류시화가 편역한 시집 <한 줄도 너무 길다>와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를 침대 옆에 두고 하루에 몇 편씩 천천히 음미했다. 절제된 몇 구절에 인생과 계절 그리고 순간의 깨달음을 함축적으로 담은 것이 바로 하이쿠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