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제약바이오 기술특허 분쟁…시장 판도 흔든다

불붙은 제약바이오 기술특허 분쟁…시장 판도 흔든다

머크 ‘키트루다’ 특허 만료 앞두고 소송 확대 양상
SK바이오사이언스, 모더나에 승소…mRNA 기술 강화
삼성바이오에피스, ‘피즈치바’ 프라이빗 라벨 계속 판매
“포괄적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 중요”

기사승인 2025-05-02 06:00:09
쿠키뉴스 자료사진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기술 특허를 둘러싼 치열한 분쟁에 나서고 있다. 기술 특허에 대한 공세와 방어, 또 그 여파가 제약바이오 시장의 판도 변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제약 기업과 잇따라 기술 특허 문제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가장 치열한 특허 분쟁이 예상되는 의약품은 미국 머크(MSD)의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다.

미국 할로자임은 국내 바이오 기업 알테오젠의 파트너사인 머크를 상대로 키트루다 피하주사(SC) 제형에 대한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할로자임은 머크가 알테오젠 기술로 키트루다의 SC 제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사의 ‘엠다제(MDASE)’ 기술을 무단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할로자임은 엠다제 관련 특허 10건에 대한 특허 심판을 진행 중인데, 소송까지 걸며 공세를 확대했다. 엠다제는 할로자임의 SC 약물전달 플랫폼 ‘인핸즈’의 차세대 기술이다.

할로자임이 알테오젠이 아닌 머크에 소송을 제기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키트루다 특허 만료와 키트루다SC 출시라는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키트루다는 비소세포폐암, 두경부암 등 13종에 달하는 다양한 암종에 쓸 수 있어 ‘꿈의 항암제’라고 불린다. 작년에만 295억달러(한화 약 36조9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지난 10년 가까이 글로벌 매출 1위 블록버스터 의약품 자리를 지켜왔다.

키트루다는 오는 2028년 특허가 만료돼 벌써부터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 경쟁에 불이 붙었다. 국내에선 바이오시밀러 시장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임상을 진행 중이다. 셀트리온은 지난달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CT-P51’의 임상 3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지난해 하반기 CT-P51에 대한 임상 3상 시험이 승인된 미국과 유럽에선 이미 임상 절차가 시행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지난해 4월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SB27’에 대한 글로벌 임상 3상을 시작했다.

키트루다 시장을 빼앗길 수 없는 머크는 제형을 바꾸는 등 특허 방어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머크는 알테오젠의 SC 제형 전환 플랫폼 ‘ALT-B4’를 기반으로 키트루다SC를 개발 중이다.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품목허가를 신청해 올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키트루다SC 개발이 완료되면 신규 특허를 통해 2030년 중반까지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소송전에 따라 키트루다SC의 출시 계획이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알테오젠은 ALT-B4의 미국 특허 등록 작업을 5월 말까지 완료해 방어에 나설 방침이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제약사를 상대로 벌인 기술 특허 소송에서 승소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최근 mRNA(메신저 리보핵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사인 미국 모더나의 ‘변형된 뉴클레오사이드, 뉴클레오타이드 및 핵산 용도’ 특허에 대한 무효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지난 2023년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 특허가 과도하게 독점권을 획득해 mRNA 백신 기술 개발을 저해한다며 해당 특허에 대한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국내에 특허 등록된 mRNA 제조 기술은 모더나의 용도 특허가 유일한데, 이 특허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 중인 일본뇌염 백신 후보물질 ‘GBP560’을 포함한 여러 mRNA 백신 제조 핵심 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mRNA 백신 플랫폼 기술은 유전자 염기서열을 활용해 의약품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팬데믹 대응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SK바이오사이언스 측은 이번 심결을 통해 mRNA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국내 기업들의 특허 리스크가 완화돼 백신 주권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최근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성분명 우스테키누맙)를 개발한 얀센의 모회사인 미국 존슨앤드존슨(J&J)과의 소송에서 승기를 잡았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미국 시장에서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 ‘피즈치바’의 프라이빗 라벨 버전을 계속 판매할 수 있게 됐다. 프라이빗 라벨이란 기업이 자사의 바이오시밀러를 직접 판매하지 않고 제3자를 통해 다른 이름으로 판매하는 것을 일컫는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23년 12월 얀센과 계약을 맺고 지난 2월22일부터 피즈치바를 미국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특허권을 취득했지만, J&J와 얀센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묵시적 성실 및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며 가처분 소송을 신청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맺은 계약에서 프라이빗 라벨 제품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게 J&J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미국 뉴저지 지방법원이 J&J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스텔라라 시장 확장과 매출 확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특허 분쟁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바이오의약품 약가 인하 정책과 맞물려 점차 심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 접근성 개선에 대한 의지를 거듭 피력하고 있다. 지난달 15일(현지 시간)에는 ‘미국인을 우선시하기 위한 의약품 가격 인하’라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여기엔 FDA가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지침과 승인을 간소화하고, 의료진이 저렴한 경쟁 제품을 처방하도록 장려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격화하는 특허 분쟁 속에서 특허 보호 전략과 분쟁 대응력이 업계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전문가들은 초기 단계부터 혁신 신약이나 제조 기술에 대한 전략적 IP(지식재산권)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은 평균 10년 이상의 긴 기간과 수조원대의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기업들은 특허 출원에 그치지 말고 초기 연구개발(R&D) 단계부터 IP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경쟁사 대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 다층적인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분쟁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필수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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