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금리 인상 여파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유상증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 혁신신약 연구개발(R&D)과 해외 진출 등 미래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유상증자는 주가 상승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자칫 기업 가치를 하락시키고 주주들의 부담을 높일 수 있어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유상증자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유상증자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곳은 부광약품, 롯데바이오로직스, 알테오젠, 큐리언트, 차바이오텍 등이다.
부광약품은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열고 총 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부광약품은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하는 자금을 기존 제조설비 확장, 신규 제조설비 취득 및 R&D 강화를 위한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방침이다. 특히 최신 내용고형제 생산설비와 자동화 시스템 도입으로 생산 공정의 효율성과 품질관리 수준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타사 공장 인수 등을 통한 생산력 보완과 함께 이를 기반으로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수출 확대 등 신규 사업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신주 배정 기준일은 오는 6월2일이며, 확정 발행가액은 7월3일 결정된다. 이후 우리사주, 구주주 및 일반청약 절차를 거쳐 7월28일 신주가 상장될 예정이다. 부광약품 관계자는 “1985년 신축된 안산공장은 그간 리모델링이 이뤄지지 않아 노후화가 심각하다”며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최신 설비를 도입하고, 생산 원가 절감과 고품질 제품의 안정적 공급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달 26일 이사회를 거쳐 21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주주배정증자 방식으로 진행되며, 신주 수량은 보통주 323만1000주, 주당 발행가는 6만5000원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조달한 자금을 지난해 3월 착공에 들어간 송도 바이오 캠퍼스 1공장 건설에 사용할 예정이다. 오는 2030년까지 약 4조원을 투자해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 3기(총 36만 리터)를 운영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주요 주주인 롯데지주와 롯데홀딩스도 2022년 롯데바이오로직스 설립 이래 세 번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12월 미국 뉴욕 동부 시러큐스에 위치한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의 공장을 인수하며 CDMO 시장에 진출했다.
알테오젠의 경우 지난 2월 공장 건설과 운영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155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시설 자금으로 550억원, 운영 자금으로 1000억원을 사용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고 자체 생산시설을 마련해 수익성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알테오젠은 공장 신설을 통해 해외에서 위탁생산(CMO) 중인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원천 기술 ‘ALT-B4’의 일부 물량을 직접 생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ALT-B4는 정맥주사(IV)를 피하주사(SC) 제형으로 바꾸는 플랫폼이다. 지난달 알테오젠은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ALT-B4의 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큐리언트는 최대주주인 동구바이오제약을 상대로 8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큐리언트는 표적항암제 ‘Q901’, 면역항암제 ‘Q702’, 이중 페이로드-ADC(항체약물접합체) 혁신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 큐리언트는 2026년까지 R&D를 지속할 수 있는 재무적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차바이오텍은 과도한 유상증자 규모가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차바이오텍은 지난해 12월 R&D 확대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당시 시가총액의 약 40%에 달하는 25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하지만 지난 1월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가 미흡하다며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하면서 효력이 정지됐다. 차바이오텍은 이후 6번의 정정신고서를 제출하고 유상증자 규모를 1800억원으로 줄였다. 주주 소통을 강화하라는 금감원 요구에 대해선 일반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를 개최하고, 정정신고서에 자금 사용 계획과 주주 소통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했다.
신약 개발에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만큼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확보가 필수 전략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 2월 금융당국이 주주 권익 훼손 우려가 있는 유상증자에 대해 중점 심사하겠다고 밝히면서 주주 소통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에 따라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소액주주들의 입김이 세질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상증자를 기반으로 한 투자가 성과를 내면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유상증자 이후 주주들과의 소통이다. 충분한 현금 여력이 있음에도 주주들에게 부담을 주는 유상증자를 진행했다간 바로 지적이 나올 수 있다”면서 “기업은 유상증자를 한 의도를 주주들에게 분명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