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병행진료’ 규제를 위한 비급여 연구에 착수한 가운데 병행진료가 전체 진료의 54%에 달하는 현실 속에서 이를 어떻게 분류하고 대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는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를 줄이겠다는 방침이지만, 환자의 선택권 축소와 의료 접근성 침해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어 이를 해소하는 것이 관건이다.
15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비급여 분류체계 정비를 위한 연구’ 용역과제 제안요청서를 공고했다. 건보공단은 이번 연구에서 비급여 특성과 성격 및 유형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비급여 항목 분류 기준을 마련하고, 급여와 병용되는 비급여의 범위를 규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앞서 일부 비중증·비급여 의료 행위를 선별급여 제도 내 ‘관리급여’로 지정해 환자가 진료비의 90~95%를 부담하게 하는 내용 등이 담긴 ‘의료개혁 2차 실행안’을 발표했다. 관리급여란 치료 효과가 불확실한 진료 등에 대해 임상 효과가 검증될 때까지 임시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과잉 우려가 큰 비급여에 대해선 항목별 가격, 사유, 대체 항목 여부 등을 사전에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도록 하는 등 환자 선택권을 확장할 방침이다.
특히 병행진료(혼합진료)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을 대폭 확대하고, 재평가를 통한 퇴출 기전을 마련한다. 병행진료는 비싸거나 크게 필요치 않은 비중증 과잉 비급여 진료를 급여 진료에 끼워 치료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가령 백내장 수술을 할 때 비급여인 다초점렌즈 수술을 한다거나, 급여가 적용되는 물리치료를 하면서 비급여인 도수치료 또는 체외충격파치료를 유도하는 식이다.
건보공단의 ‘2024년 상반기 비급여 보고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분 1068개 비급여 보고 항목의 진료비 규모는 총 1조8869억원이다. 의과 분야에서 진료비 규모가 가장 큰 분야는 도수치료로 1208억원을 기록했다. 근골격계 질환 체외충격파치료 진료비는 700억원으로 집계됐다.
병행진료 팽창은 실손보험과 관련이 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는 전 국민의 78%인 4000만명에 이르며, 한해 지급된 실손보험비만 14조원을 기록했다. 이 중 비급여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57%에 이른다. 실손보험은 고가의 비급여 진료까지 보장하면서 수요가 높아졌지만, 과다·과잉진료라는 부작용을 양산하며 의료 현장과 건강보험 체계를 왜곡하는 주된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최근 발표된 감사원 자료를 보면, 실손보험 탓에 연간 최소 12조9400억원의 추가 의료비가 유발되고, 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최소 3조8300억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했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주로 이용한 의료 서비스는 물리치료, 백내장 수술, 발달지연 치료, 갑상샘 절제술, 자궁·유방 수술 등이었다. 2022년 기준 비급여 가운데 가장 진료비용이 큰 항목은 물리치료로, 외래진료에서 연간 1조2461억원, 입원진료에서 1조2357억원이 추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손보험 부정 청구 추정 사례도 상당수 적발됐다. 환자가 실제와 다른 병명으로 실손보험을 청구한 사례는 2018~2022년 5년간 5183만건으로, 10조6000억원이 지급됐다. 지난 5년간 실손보험만 청구되고 병·의원이 건강보험은 청구하지 않은 진료는 730만건에 달했다. 이 중엔 코 성형을 한 뒤 비염 치료를 한 것처럼 속이거나, 피부미용 시술을 받고도 도수치료를 받았다며 실손보험을 청구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있었다. 감사원은 “실손보험 가입자가 비가입자와 동일한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이용했다면 건강보험 재정에서 연간 3조8300억~10조9200억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비급여·실손보험 확대와 병행진료 팽창으로 인해 건보 재정과 의료 환경에 피해가 누적돼 개선 필요성이 높아지지만, 환자의 치료 선택권 제한 측면에서 봤을 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한안과의사회는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병행진료 제한 정책은) 환자의 치료 선택권을 제한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도 “의료비 증가 속도를 관리해야 하는 건 맞지만, 과도한 비급여 통제로 인해 오히려 의료의 질은 떨어지고 환자의 불편함이 커질 것”이라며 “의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진료를 제한하고 환자 부담을 늘린다면 결국 환자들이 치료를 꺼리게 될 것이며 국민 건강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는 차원에서 병행진료 규제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은혜 순천향대부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혼합진료 규제보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먼저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의료서비스의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이 증명된 꼭 필요한 서비스는 급여화해야 하며 최소한의 원가를 보장해야 한다. 이게 선순위이고 비급여 관리나 혼합진료 금지는 그 다음 순서”라며 “일부 의사들이 비급여 진료를 과도하게 하면서 대놓고 영리를 추구한 것은 잘못이지만, 처음부터 제도를 잘못 설계하고 방치한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