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C 시화공장 사망사고 여파로 크보빵 등 편의점 빵 제품 수십 종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점주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공장 가동 중단이 장기화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제조사 리스크로 인한 피해를 떠안은 편의점 점주들은 대체 상품 발주에 분주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경우 본사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업계는 지난 20일부터 SPC 제품의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SPC 시화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이후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되며 제품 생산과 납품이 모두 멈춘 데 따른 것이다. 앞서 19일 오전 3시께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근로자가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던 중 기계에 상반신이 끼이는 사고로 사망했다.
사고 직후 이마트24는 20일부터 약 40종의 빵 제품 공급이 중단됐고 GS25 역시 빵 및 냉장식품 약 50종의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 가운데 크보빵, 포켓몬빵 등 주요 인기 제품이 포함돼 있으며 빵만 놓고 보면 약 30종이 공급 중단된 상태다. 세븐일레븐도 같은 날부터 약 40종의 빵 공급이 멈췄고 CU는 지난 22일부터 SPC 제품 30여 종의 정상 공급이 중단됐다.
이날 방문한 편의점들의 점주들은 아직 매장에 SPC삼립 제품이 일부 남아 있어 매대가 비거나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은 없다고 했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를 우려하고 있었다. SPC는 현재로서는 생산 재개 시점을 확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는 “지금 매대에 있는 게 마지막 크보빵”이라며 “남아있는 SPC삼립 제품들이 있어 아직 매출에 눈에 띄는 영향은 없지만 기존에 발주하던 품목을 조금씩 바꿔야하다 보니 골치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그는 “손님들은 제품이 SPC 제품인지 여부보다 기존에 즐겨 먹던 걸 찾는데 남은 SPC 제품들까지 빠지게 되면 익숙한 제품이 없다며 손님들이 의아해할 것 같다”며 “자꾸 이런 사고가 왜 터지는지 모르겠다. 매장 운영에 혼선을 주는 이슈들이 줄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급 중단 품목 중에는 인기 제품인 ‘KBO빵(크보빵)’도 포함됐다. 지난 3월 출시된 크보빵은 4월 말 기준 누적 판매량 1000만봉을 돌파하며 SPC삼립 역대 최고 히트 상품으로 꼽히기도 했다. 프로야구 인기에 힘입어 소비자들이 패키지 안에 들어 있는 선수 스티커를 수집하기 위해 제품을 찾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국적으로 품절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고 발생 직후인 지난 20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크보빵에 반대하는 크보팬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한 콜라보 뒤에 감춰진 비극, 크보팬은 외면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의 불매운동 글이 올라오며 온라인 서명 운동이 시작됐다. 해당 서명은 빠르게 2000명을 돌파하며 확산되고 있다. SPC삼립은 결국 29일 크보빵은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또다른 편의점 점주 B씨는 “발주 중지된 이후에도 현재 매장에 소량 남아 있는 크보빵이 있지만 사고 이후 여론이 급격히 돌아서면서 예전처럼 빠르게 소진되지는 않는다”며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SPC 제품 추가 발주에 서두를 필요가 덜해졌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SPC 시화공장의 가동 재개 일정은 확정되지 않아 생산 중단이 결정된 크보빵 외 다른 제품이 다시 편의점에 공급될 수 있는 시점도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편의점 본사들은 점주들에게 SPC 제품 대신 타사 제품으로 매대를 채울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지만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본사나 시스템의 결함으로 인해 결품이 발생할 경우 일정 수준의 지원금이 지급되기도 하지만 이번처럼 제조사 이슈로 인한 결품에는 별도의 금전적 지원이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는 않다”며 “현재 가장 큰 공백이 생긴 빵 제품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대체 가능한 상품이 많아 점주분들이 자율적으로 대체 발주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SPC 제품 발주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본사는 공지사항 등을 통해 업주들에게 대체 발주 가능 품목 리스트를 안내하고 있다”면서도 “제조사 측 이슈인 만큼 본사 차원에서 업주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별도 장치는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존 인기 상품의 판매가 중단돼 대체 상품 발주가 급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편의점 점주들은 제조사 리스크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 제조사 과실로 발주에 차질이 생긴 경우 본사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나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편의점가맹협회 관계자는 “크보빵처럼 트렌드성 강한 제품의 유행 주기는 짧은 편이기 때문에 편의점 점주들은 짧은 시기에 발 빠르게 대응해 매출을 올리곤 한다”며 “이처럼 갑작스러운 이슈로 인기가 꺾이면 점주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라고 말했다.
이어 “편의점 업주들은 본사가 계약한 제조사 제품만 발주할 수 있어 자체 대응이 어렵고 과거에는 ‘결품보상금’ 범위가 넓었지만 이번 사안처럼 제조사 이슈로 발생한 결품은 별도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이와 같은 문제가 지속될 때 점주들을 지원할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