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 지속형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인 ‘보카브리아’와 ‘레캄비스’ 병용요법이 지난 4월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아 임상현장에서 활발하게 처방되고 있다. 날마다 약을 먹어야 했던 기존 경구 치료를 연 6회 투약으로 줄여 복약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이 특징이다. HIV 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인한 치료 어려움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한국GSK는 17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에서 장기 지속형 HIV 주사제 ‘보카브리아+레캄비스’ 주사요법의 국내 출시를 기념하는 기자 간담회를 진행했다.
HIV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을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다. HIV가 몸속에 침입해 면역 기능을 떨어뜨려 감염인의 면역세포(CD4+T세포) 수가 200/㎕ 미만이 되면 에이즈로 진행된다. 과거엔 HIV 치료를 위해 하루에 수십 개의 항바이러스제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칵테일 치료’ 방식이 활용됐다. 이후 1일 1회 복용하는 단일 정제의 경구요법이 등장하면서 치료 편의성이 향상됐다. 그러나 첫 진단부터 오랜 기간 치료를 받으며 날마다 약을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를 극복한 치료법이 영국 제약사 GSK의 ‘보카브리아’(성분명 카보데그라비르), 미국 제약사 얀센의 ‘레캄비스’(성분명 릴피비린) 주사 병용요법이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은 지난 2022년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바이러스학적으로 억제돼 있고, 치료 실패 이력이 없으며, 카보테그라비르(CAB) 또는 릴피비린(RPV)에 알려진 또는 의심되는 내성이 없는 성인 환자의 HIV-1 감염 치료’ 목적으로 승인된 바 있다. 지난 4월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됨에 따라 임상 현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의 장점은 단연 편의성이다. 기존의 HIV 치료는 경구제를 매일 복용해야 했지만, 병용요법은 월 1회 혹은 격월 1회 근육 내 주사제 투여로 최대 연 6회까지 투여 빈도를 줄였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은 기존 3제 경구제(BIC·FTC·TAF)와의 비교 임상을(임상명 SOLAR) 통해 12개월간 치료 실패율이 1% 수준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바이러스 억제 효과(HIV RNA<50copies/㎖) 유지율은 주사제군 90%, 경구제군 93%였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주사 부위 반응을 제외하고 양 군 간 큰 차이는 없었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으로 약을 바꾼 HIV 감염인은 3제 경구제를 복용한 감염인보다 치료 후 11~12개월 시점에서 높은 치료 만족도를 보였다. GSK가 공개한 치료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기존 경구제를 복용하던 HIV 감염인 425명 중 90%(382명)가 주사요법으로 전환한 후 경구제보다 주사제 치료를 더 선호했다. 85%는 ‘매일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편의성’, 59%는 ‘타인에 감염 사실 노출 걱정 없음’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김연숙 충남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내 HIV 감염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HIV 치료 시 적은 빈도로 투약하는 것에 대한 니즈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이 최근 급여가 적용된 만큼 HIV 감염인들의 생활에 따라 장기 지속형 HIV 주사제로 치료 옵션을 변경하는 것을 고려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보카브리아+레캄비스 병용요법은 HIV 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인해 치료가 어려운 문제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HIV 질환은 당뇨나 고혈압처럼 평생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잘못된 정보 확산과 낮은 인식으로 여전히 부정적인 질환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 작년 국내 HIV 감염인 단체인 ‘러브포원’이 HIV 감염인 16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73%가 ‘치료제 복용 시 주변 사람들이 HIV 감염 사실을 알게 될까봐 두렵다’고 답했다. 51%는 ‘HIV 치료제를 복용할 때마다 감염 사실이 떠올라 우울감이나 불편함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HIV 감염인들이 6개월 이상 규칙적으로 치료제를 복용하면 바이러스가 검출 불가 상태에 이르러 타인에게 성 접촉을 통해 HIV를 전파시키지 않는다”며 “이처럼 HIV 치료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한국에선 여전히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낙인이 만연해 감염인 스스로가 갖는 내재적 낙인도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HIV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감염인의 치료 순응도에 영향을 미쳐 많은 감염인이 적극적인 조기 치료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임은 물론 지속적인 치료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면서 “보카브리아+레캄비스 주사요법은 국내 HIV 감염인의 감염 사실 노출에 대한 불안을 낮추고, 매일 복용하는 경구제로 인한 일상의 불편과 걱정을 해소하는 치료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