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맨날 계란프라이만 싸 오냐고요? [1.5평의 권리③]

왜 맨날 계란프라이만 싸 오냐고요? [1.5평의 권리③]

-두 명 눕기도 힘든 좁은 공간…음식 냄새 날까 계란·김 반찬만
-천장 높이 1m 50cm…무릎 꿇고 옷 갈아입어
-여전히 화장실서 쉬는 노동자…사람답게 쉴 공간 언제쯤

기사승인 2021-12-15 06:25:06

1.5125평. 서울시가 정한 1인 휴게 공간 적정면적입니다. 현실은 빠듯합니다. 9명의 노동자에게 주어진 공간은 1평 남짓입니다. 어떤 이는 계단 구석에서 또 다른 이는 곰팡이 슨 지하에서 숨을 돌립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일하러 간 직장에 휴게실이 왜 필요하냐고요. 노동자는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쉴 권리가 있습니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열악한 휴게 공간을 돌며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뀌긴 할까요” 묻던 한 노동자에게 이제는 우리 사회가 답할 차례입니다.

*기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취재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서울 한 대학교 화장실에 만들어진 청소노동자 휴게 공간. 민주노총

추운 날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밖에서 얘기하기는 좀 그렇죠. 동국대 혜화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내리세요. 네, 꼭대기 층 맞아요. 학생들 공부하는 카페테리아, 강의실을 쭉 지나세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옆, ‘미화원 대기실’이라고 써진 곳 있죠. 여기가 쉬는 곳이에요. 참, 인사를 빼먹었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동국대 청소미화원입니다. 

따끈한 유자차 어떠세요. 전기 포트에 물을 올릴게요. 방이 특이하죠.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 형태에요. 입구 쪽은 1m 30cm, 안쪽은 1m 10cm입니다. 합판으로 가벽을 세워 만들었어요. 1평 미만인 대기실은 저와 동료가 쓰고 있습니다. 둘이 눕기도 힘든 공간입니다.

[위 사진은 360도 VR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입니다.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으면 쿠키뉴스 기사원문(클릭)에서 확인해보세요.]


점심시간은 1시간입니다.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대기실에서 먹습니다. 행여 문밖으로 음식 냄새가 나갈까 노심초사합니다. 눈치가 보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김, 계란프라이 같은 반찬만 싸 오게 되네요. 동료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싶지만, 이리저리 자세를 고쳐봐도 영 불편합니다. 한 명은 서서, 한 명은 평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먹는답니다.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 휴게실. 낮은 천장 탓에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한다.   사진=정진용 기자

이번 여름은 잊을 수 없어요. 밤새 내린 비가 옥상에서 흘러넘쳤습니다. 출근하니 신발이 둥둥 떠다닐 지경이었어요. 합판은 썩고 곰팡이가 꽃을 피웠습니다. 지금 멀쩡해 보이는 건 페인트로 덮었기 때문이에요. 겨울에는 벽에서 냉기가 올라오고 옥상에서 웃풍이 들이쳐요. 누우면 코끝이 빨개집니다. 이불을 눈 밑까지 추어올려야 합니다. 제 돈으로 스티로폼을 사서 벽에 붙였는데도 역부족이에요. 

[위 사진은 360도 VR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입니다.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으면 쿠키뉴스 기사원문(클릭)에서 확인해보세요.]
저는 허리라도 똑바로 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른 건물에서 일하는 동료는 1층 계단 밑 공간을 개조한 곳에서 쉽니다. 한번 가 볼 생각이 있다면 머리를 조심하세요. 천장 높이가 1m 50cm 정도 될 거예요. 동료도 처음에는 이곳저곳 많이 부딪혔대요. 저희는 출퇴근할 때 환복을 하거든요. 그동안은 무릎을 꿇고 옷을 갈아입었다고 하더라고요. 얼마 전 의자를 어디에서 구했대요. 이제는 의자에 앉아 갈아입으니까 그나마 낫다고 하네요. 

아직도 화장실에서 쉬는 동료들이 있어요. 다른 대학 사정도 마찬가지죠. 휴게실이 있지만, 마음 놓고 쓰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근무지에서 멀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하기도 눈치가 보이거든요.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화장실 뿐인 거에요. 학교에서 청소 노동자를 보는 눈이 그래요. 할 일은 하되 보이지 않는 데 있어 달라는 거죠. 

서울 한 대학교에 만들어진 청소노동자 휴게 공간.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어 선풍기로 여름을 난다. 민주노총

새로운 휴게실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요. 몸을 움츠리지 않아도 된다면 말이에요. 조금 욕심 내본다면 휴게실에 싱크대도 있었으면 합니다. 지저분한 도시락통, 보기 그렇잖아요. 화장실 세면대에서 헹구다가 학생이랑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게 참 민망해요. 

알아요.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건 청소뿐이라는 걸. 대접 받으러 온 게 아니에요. 사람답게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기자님, 저는 그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아닌가 봐요. 우리가 많은 걸 요구하는 건가요? 그저 잠깐이라도 편히 쉬어야 더러운 곳 한 번이라도 더 닦는 걸 얘기하는 건데.

[1.5평의 권리]
 ①주차장, 창고, 트렁크…쉴 곳을 고른다면
 ②감옥에 갇히면 이런 기분일까
 ③왜 맨날 계란프라이만 싸 오냐고요?
 ④노동자 수백명, 휴게실 의자는 7개
 ⑤19명이 샤워실 앞에 줄을 섰다
 [친절한 쿡기자]1.5평의 권리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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