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난방비 폭탄으로 시름겨웠던 겨울도 남도에서부터 불어오는 훈풍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지하철 3호선과 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 3가역, 6번 출구로 나오면 MZ세대의 새로운 ‘핫플레이스’ 익선동 한옥거리, 맞은편 3번 출구로 나오면 아직도 겨울의 끝자락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는 돈의동 쪽방촌이 있다. 돈화문로 11길을 중심으로 마주한 두 골목에는 우리 시대의 풍요로움과 아픔이 공존한다.
쿠키뉴스는 1,2편에 나눠 돈의동 쪽방촌과 익선동 한옥거리를 소개한다.
-종로3가역 3번 출구서 갈리는 '삶의 무게'
-삶의 애환이 담긴 이름 ‘쪽방’
-색안경 벗고 보면 똑 같이 사람 사는 곳
-난방비 폭탄으로 월세 오를까 걱정
-한옥거리 불 들어오면, 쪽방촌은 어둠 속으로
[1편] 빈자들의 마지막 보금자리 ‘쪽방’
“지나온 과거를 묻지 마세요, 흘러간 세월에 눈물짓지 마, 서러운 시간 속에 이슬이, 지내온 과거를 이제는 떨쳐버리고 웃으리.”
돈의동 쪽방촌 주민이 서울특별시립 돈의동쪽방상담소의 도움을 받아 펴낸 ‘우리들의 인생 책’ 속 ‘내 인생의 노래’ 시 중 한 구절이다. 우수도 지나고 여기저기서 봄소식이 들리지만 종로구 돈의동 103번지 일대에 위치한 쪽방촌은 아직도 냉기 가득하다.
지난 17일, 종로 3가역 3번 출구를 나와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서 몇 발자국 안가니 우측으로 5층 건물의 돈의동 쪽방주민공동시설인 새뜰집과 좁은 골목에 2층, 3층 낡은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과거 대규모 집창촌이 있던 자리였으나 현재 돈의동 쪽방골목에는 3300㎡(1,000평) 정도의 땅에 84채의 건물과 730개의 쪽방 그리고 500여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쪽방크기는 작게는 2.3㎡(0.7평)에서 크게는 4㎡(1.2평)까지 크기가 제각각이고, 건물 구조도 목조부터 벽돌, 콘크리트까지 다양하다.
돈의동 쪽방촌은 모두 4개의 출입구가 있지만 어떤 출입구도 길에서 꺾어 들어오는 구조를 하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돈의동 쪽방촌은 창신동, 남대문5가, 동자동, 영등포 쪽방촌과 함께 서울 5대 쪽방촌으로 불린다.
-희망 불씨 살리는 ‘쪽방촌상담소’
쪽방촌 사람들을 만나기 전 이들의 삶을 보살피고 있는 새뜰집 내 대한구세군유지재단이 서울시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돈의동쪽방상담소를 찾았다. 지난 2019년 4월 문을 연 돈의동 쪽방주민공동시설 새뜰집은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로 세탁실, 샤워실, 공동주방, 보건실, 긴급구호실, 상담실, 작업장, 교육프로그램실, 새뜰마당(텃밭) 등을 갖췄다.
이 건물 3층에 위치한 서울시립 돈의동쪽방상담소에서 만난 최선관 실장은 “본인들의 재활 의지가 중요하다. 서울시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도움을 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최소한 여기 사시는 분들은 삶의 질은 떨어지지만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그렇게 심하지 않다. 대부분 건물에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고 언제든 따뜻한 물에 샤워도 할 수 있다. 치아 보철은 물론 임프란트까지 무료로 해준다. 일 년에 몇 차례 버스로 나들이도 다녀오고 농촌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래도 주거환경이 너무 열악하니 주거개선을 해주면 삶의 질이 조금 높아지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건 개개인의 건물이고 동의 받기도 쉽지 않다. 주거 환경이 좋아지면 낙후되었던 지역이 개발되면서 임대료나 주거비가 올라 원주민 쫒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되는 걸 주민들은 오히려 두려워한다. 그건 기자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불편하지 이분들이 지금 생활하시는 현재의 터전이 어떻게 보면 이들에게 가장 편안한 예수님의 마구간 같은 곳이다. 사회 어디서도 환대받지 못하는 분들이 여기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살아가고 있다. 본인들 마음이 편한 곳이 가장 행복한 곳이 아니겠냐”며 반문했다.
쪽방촌 취재는 새뜰집에서 전일제 근무를 하고 있는 주민 문00(57) 반장이 안내했다. 문 반장은 “저부터도 그렇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마음의 상처가 많은 분들이어서 조심스럽게 촬영하시고 너무 곤란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이 곳도 색안경을 벗고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똑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 사는 곳”이란다. 민 반장은 “세월이 이렇게 짧은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살건데, 젊어서는 돈 벌어서 모두 사행성 게임에 쏟아 부었다. 결혼도 못하고 전전하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 들어왔다.”면서 “몇 년 전부터 정신 차리고 저녁에 식당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열심히 저축하고 있다. 돈이 쌓이면 영구 임대주택을 분양 받아서 나가 떳떳하게 가족과 재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쪽방촌에서도 정말 어려운 분들은 건물 밖으로 창고처럼 내어만든 1평도 안 되는 방에서 산다. 외벽도 부실해 그야말로 추위와 더위를 온 몸으로 버티며 살 수 밖에 없다. 문 반장이 문을 두드리고 살짝 열어보고 할머니 한분이 두꺼운 이불을 덮고 방한복에 털모자를 쓰고 낡은 TV를 시청하고 있다. 올 겨울 추위에 어떻게 지냈냐고 묻자 “그래도 집 주인이 착해서 전기장판 온도는 마음껏 올려서 그런대로 견뎠다. 기초생활수급자여서 나라에서 난방에 보태라며 10만원(에너지바우처 지원금)도 줬다. 하지만 2월 달 난방비가 나오면 집주인들이 월세를 올린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걱정”이라고 한숨짓는다.
문 씨는 골목 끝에 있는 자신의 쪽방으로 안내했다. 사람하나 겨우 통과할 수는 좁은 통로를 지나 철 계단을 오르니 2층에 방 4개와 화장실이 하나 딸려 있었다. 4개의 방 중 한 곳은 비어 있는데 쓰레기가 가득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방이 이 곳에서는 가격이나 크기가 중간 정도라고 했다. 문 반장의 방 역시 비교적 정리는 잘되어 있었지만 옷가지와 TV, 식사도구로 가득해 방안은 겨우 작은 몸 하나 누울 정도다. 돈의동 쪽방촌은 크기에 따라 23만에서 28만원이다. 일부는 이곳에서 호텔로 불리는 일반 쪽방 크기 2배 정도의 원룸도 있다. 이곳은 작지만 방안에 화장실과 주방도 있다. 대략 월 임대료는 40만원이란다.
-희망 싹 틔우며 미래 꿈꾼다.
문 씨는 취재 협조가 가능한 아웃집 나00 씨(65)를 소개 해줬다.
막 새뜰집에서 샤워를 마치고 귀가 중인 나 씨와 함께 그의 2층 쪽방을 찾았다. 나 씨가 문을 열고 불을 켠 순간 멈칫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방은 검은 벌레들로 가득했다. 바퀴벌레다. “여기는 건물이 낡고 남은 음식찌거기가 많아 바퀴벌레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다. 아무리 약을 뿌리고 끈끈이 테이프로 잡아도 해결 방법이 없어 그냥 같이 살고 있다.” 허탈하게 웃는다. 그래도 사람이 들어가고 나 씨가 만든 끈끈이 테이프를 말아서 만든 대나무 막대를 들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 재벌 회장 집을 비롯해 한때는 인테리어 공사 엄청 많이 했어요”
나 씨는 일본에서 전기 관련 공부를 하고 돌아와 전기공사와 인테리어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일본 여성과 결혼해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도 있다. 하지만 순탄할 것만 같았던 사업은 50대 중반 함께 일했던 동업자에게 속아 전 재산을 모두 날리고 빛까지 졌다. 아내와 이혼하고 화병으로 술과 폭력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알코올중독으로 치료도 받았다. 그렇게 지낸 5~6년 동안 몸도 마음도 모두 망가져 마지막 들어온 곳이 이 곳이다. 지금도 그는 서서히 양을 줄여가지만 알코올중독치료제, 분노조절제, 수면유도제를 비롯 6가지 약을 복용 중이다. 그는 돈의동쪽방상담소에서 꾸준히 상담을 받았다. 그는 요즘 틈나는대로 세운상가와 용산전자상가를 찾는다. 일본에는 없는 진흙으로 만든 전기절연체를 만들어 일본 업체를 방문할 계획이다. 다시한번 멋지게 재기해 일본의 가족도 만나고 할아버지가 건재함을 손주들에게 보여주고 싶단다.
하지만 옆방의 박00(76) 할아버지는 무기력하게 TV만 시청하고 있다. 그의 방에는 각종 약병과 낡은 상 위에 가스레인지, 양은냄비와 반찬통, 먹고 난 후 채 버리지 못한 컵라면 등 일회용 용기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다리가 불편해 바깥 출입도 어려워 주로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동행식권’을 받아 나 씨가 식사를 가져다 준다.
저녁 식사는 잘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말이요, 밥 먹는 거 보다 외로운게 더 힘들어” 아무 희망이 없어 보이는 박 씨의 굽은 등 뒤로 쓸쓸함이 묻어났다.
나 씨의 쪽방을 나와 또 다른 쪽방으로 이동 중 교도소에서 22년을 살았다는 전00(68) 씨를 만났다. 인상도 날카로운 전 씨의 첫마디는 “여기서 사진 함부로 찍다가는 카메라 빼앗겨요, 혹시 멀리서라도 나 찍은 거 아니죠” 사실 멀리서 그가 담배피우는 옆모습을 촬영했는데 살짝 겁이 났다. “그래도 남자답게 생겼다. 인상이 좋다. 본인 같은 사람이 여기 골목은 지키니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겠다.”라고 했더니 ‘그건 사실’이라며 바로 경계를 푼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잠시지만 전 씨와의 진땀나는 만남을 벗어나 쪽방촌에서 가장 럭셔리 하다는 강00(74) 씨의 원룸을 방문했다.
-봄 기다리는 심정은 누구나 같아
새뜰집에서 근무하는 강 씨는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기 전 조용히 기도 시간을 갖고 있었다. 인간의 눈은 참 간사한가 보다. 1평 내외의 쪽방만 둘러보다 2평 정도의 원룸을 보니 그렇게 넓어 보일 수가 없다. 작지만 주방과 화장실이 딸린 샤워실도 있다. ‘쪽방 크기가 모두 이정도만 되어도~’라는 생각과 ‘그럼 쪽방이 아니지’라는 결론에 스스로 쓴웃음을 지었다.
강 씨는 쪽방촌 인근의 큰 교회를 다니다가 왠지 모를 주위의 눈총이 싫어서 지금은 쪽방촌상담소에서 매주 화요일 오전에 드리는 예배에만 참석한다. 강 씨 역시 내년이나 후년 쯤 영구 임대주택을 분양받아 나가려고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나이가 고령이어서 취업도 어렵고 이 곳을 떠나면 지금 받고 있는 혜택이 크게 줄어 어찌할까 고민 중이다.
강 씨 원룸을 나서자 어느새 쪽방촌 골목의 가로등 켜져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인천의 한 재래시장 노상에서 남성바지를 판매하는 김00(71) 씨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데 어떤 날은 점심 값도 안나온다”며 “그래도 지하철은 무상이어서 바람도 쏘일 겸 매일 다녀온다”고 했다. 쪽방촌 입구의 철이슈퍼 앞에서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돌아온 주민 두 사람이 낡은 의자 위에 순대를 안주삼아 소주를 나누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었는데 어쩌다 오가는 사람 외에는 적막이 가득하다.
봄이 멀지않았지만 아직도 한 겨울 같은 쪽방촌을 몇 걸음 옮겨서 다시 3번 출구 쪽으로 나왔다. 금요일 저녁의 돈화문로 11길은 Led 등으로 환하게 불을 밝힌 형형색색의 포장마차와 밝은 표정의 젊은이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3번 출구 건너편 6번 출구 뒤편의 익선동 한옥거리 역시 ‘불타는 금요일 밤’의 또 다른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글·사진=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