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방문 요양보호사들에게 신분증 형태의 녹음 장비를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이를 두고 요양보호사와 재가장기요양기관(요양기관) 간의 시각이 엇갈린다. 정부는 시범운영 결과를 토대로 전국 확대 보급을 검토한단 계획으로 양측의 입장 조율이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2일 요양기관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3일부터 10일까지 ‘방문 요양보호사 대상 녹음 장비 보급 시범사업’에 참여할 요양기관을 선발하기 위해 수요조사를 실시한다. 녹음 장비 보급 시범사업은 성희롱과 성폭행, 폭언 등 인권침해 상황에 노출되기 쉬운 방문 요양보호사를 보호하고 장기요양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 중 하나다.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홍보 문구가 삽입된 신분증형 녹음기기는 방문 보호사들에게 지급될 예정이다. 수요조사를 거쳐 이달 중 경기도 내 80개소 요양기관을 선정하고 기관당 최대 5개까지 전달된다.
시범운영 기간은 오는 11월까지다. 복지부는 사업 종료 후 설문조사를 통해 종사자 만족도를 분석한 뒤 녹음기기의 전국 확대 보급을 검토할 예정이다.
요양보호사 향한 갑질 팽배…“제도적 보호 장치 필요”
하지만 이번 시범사업을 두고 보호사와 기관 간 입장과 해석이 갈린다. 먼저, 요양보호사들은 녹음 장비 보급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이번 조치가 방문 요양보호사들이 처한 근본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줄 순 없겠지만, 보호책의 하나로 기대할만하단 평가다.
노우정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2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방문 요양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들 중엔 아들, 딸, 며느리가 월급 주고 고용했단 생각에 요양보호사들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있다”며 “야한 동영상을 보여준다거나 폭언하는 등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요양보호사들을 향한 갑질과 성희롱 문제는 팽배하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요양보호사 절반가량이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고, 네 명 중 한 명은 성추행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370명 중 173명(46.8%)은 자신이 돌보는 노인으로부터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람은 93명(25.1%)이었고, 폭언·욕설 피해를 겪은 이는 239명(64.6%)에 달했다.
노 위원장은 “요양보호사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요양보호사들은 그저 자신이 갈고닦은 노하우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요양기관에 소속돼 있더라도 피해 소식을 기관에 보고하면 ‘그냥 참으세요’라며 회유하려 들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은 제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양보호사들이 헌신하고 희생하며 참도록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 이번 시범사업은 요양보호사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가는 일환으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노 위원장은 “일방적으로 녹음기를 들이대는 것은 요양보호사들이 겪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라며 “장기적 측면에서 어르신이나 보호자들이 요양보호사들에게 가하는 잘못된 행동이 얼마나 옳지 못한 것인지 인식시키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녹취 합법화 시 서비스 질 저하… 정부가 불법 조장”
반면, 요양기관들은 시범사업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보호자나 서비스 수급자의 동의 없이 녹취하는 건 불법이라며 이는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단 주장이다.
임용민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사무총장은 “녹음 장비 보급이 제도화 된다면 수급자들이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다”며 “요양보호사들의 녹취를 합법으로 풀어주면 서비스의 질 저하를 불러올 수 있고, 자칫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불법을 조장한다고도 했다. 임 사무총장은 “정부가 요양보호사들에게 녹음기를 지급하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어르신들의 가정에 가서 녹취가 가능토록 하는 것은 결국 불법을 조장하는 일”이라며 “역으로 서비스 이용자들 측에서 문제 제기를 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짚었다.
정부는 녹음기를 보급하기 전 산업안전보건법, 통신비밀보호법 등을 기반으로 한 금지행위, 녹음 장비 활용, 녹음 파일 관리·사용 등과 관련된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염민섭 복지부 노인정책관은 “요양보호사가 녹음 장비를 활용하게 되면 안전한 근무 환경에서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종사자와 이용자가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