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민사9부 이인복 부장판사가 10일 존엄사를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후 한 말이다. 재판부는 생명은 최상의 가치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면서도 자기결정에 따라 ‘죽을 권리’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단 연명치료 중단은 엄격한 요건이 충족될 경우 인정돼야 한다며 4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환자가 회생가능성이 없는 비가역적(非可逆的)인 사망과정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택할 수는 있지만 생명을 임의로 단축하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담당의사의 의견과 제3의 중립적인 의료기관이 이를 판단해야 하고 병원윤리위원회 같은 기구의 심의가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또 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환자의 의사가 진지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식을 상실해 본인이 치료 중단을 요구할 수 없을 때는 환자의 평소 언행, 생활태도, 인생관과 종교관, 유사 치료행위에 대한 평소 견해를 종합해 진정한 뜻을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단하는 치료는 연명에 관한 것으로 국한했다.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가 포함되서는 안되며 치료 중단은 의미가 크므로 의사가 직접 시행돼야 한다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원고인 김모(77)씨의 경우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한 의견도 내놓았다. 재판부는 “김씨가 담당주치의 뿐 아니라 다른 전문의에게도 회복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판단을 받았고 의식을 잃고 11개월이 지났으나 개선 징후가 보이지 않아 비가역적 사망과정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또 3년 전 남편의 임종 당시 생명 연장을 거부하고 그대로 임종을 맞게 하면서 “내가 소생하기 힘들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고 말한 점, 인공호흡기는 고통을 완화하는 치료가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연명치료 중단 요건과 김씨의 사례가 부합한다고 판결했다.
판결에는 생명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재판부의 깊은 고민이 엿보였다. 이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안락사나 존엄사라는 용어는 사용치 않았다”며 “안락사는 역사적으로 잘못 사용된 사례가 있어 오해 가능성이 있고 존엄사라는 건 죽음의 과도한 미화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판결의 취지를 오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지금도 병마와 싸우는 환자, 가족, 의료진의 고귀한 노력을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는 판단이라고 여기지 않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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