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지급토록 명령한 금액은 1950년을 기준으로 한 액수다. 선고 당일까지 매년 5% 지연 이자를 감안하면 실제 배상액은 200억여원에 이른다.
보도연맹은 1949∼50년 정부가 좌익 관련자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대외적으로는 좌익전향자 단체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관변단체의 성격을 띠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당시 장석윤 내무부 치안국장은 전국 보도연맹원을 구속하라고 지시했고, 울산경찰서와 국군정보국은 울산 보도연맹원을 소집·구금해 경남 울산군 대운산 골짜기 일대에서 집단 총살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6년 10월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개시, 2007년 11월 울산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 명단 407명을 확정했다. 이에 유족들은 정신적 피해 배상 소송을 냈고 국가는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1960년에 유해가 발굴됐지만 희생자의 구체적인 사망경위에 대해 여전히 알지 못하는 등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고 2007년 위원회의 희생자 명단 발표로 비로소 진실이 알려졌다”며 “손해배상 청구권이 시효로 인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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