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20일 짙은 황사로 뒤덮인 하늘은 고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드러내듯 잔뜩 흐렸다. 밤새 내린 눈은 명동성당을 하얗게 감싸안으며 아낌 없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온 김 추기경의 영면을 기원하는 듯 했다.
고 김 추기경의 시신은 고별 예식이 끝난 뒤 검은 사제복을 입은 서울대교구 소속 신부 8명의 손에 들린 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 앞으로 십자가와 김 추기경의 영정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전 11시 45분 삼나무 관이 대성전 앞마당으로 나왔다. 성도들은 대성전 입구 계단뜰과 앞마당을 가득 메운 채 숨을 죽였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운구차가 움직이자 추모객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편히 쉬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며 손을 흔들었다.
운구차가 빠져나갈 때 때마침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명동성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루에 세번 울리는 종은 김 추기경이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 가슴에 깊은 메아리를 남겼다.
명동성당에 들어서지 못한 신도들은 길에 서서 인사를 건넸다. 눈물을 훔치는가 하면, 떠나는 모습을 간직하려고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천주교 용인공원묘지로 가는 길은 붐비지 않았다. 도로에서 만난 차량들은 알아서 운구차량을 피했다. 갓길에 차를 세운채 운구 행렬을 바라보는 시민들도 있었다. 수지∼영덕간 도로 위에서는 신갈성당 신도 20여명이 ‘추기경님, 주님 안에 편히 쉬소서’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다. 일부는 호위 경찰차가 나타나자마자 굵은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이강우(60)씨는 “명동성당에 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 성당 옆으로 지나간다길래 ‘안녕히 가시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면서 “1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추운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운구차를 뒤 따른 정진석 추기경은 착잡한 듯 침울한 표정으로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운구행렬이 용인시로 진입하자 시민들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죽전역 앞에는 200여명이 늘어서 있었다.
오후 1시30분 하관예절이 시작됐다. 김 추기경의 관이 안장될 곳에 도착하는 순간 간이 천막을 받치고 있던
기둥이 넘어질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이윽고 묘지관리원 6명이 120㎝ 아래 땅 속으로 관을 내리는 순간 추도객들의 입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가가 흘러나왔다.
내내 구름에 숨어있던 해도 모습을 드러내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주교와 유족, 김 추기경의 비서실장과 비서수녀 등이 성수를 뿌린 뒤 관 위에 흙을 덮었다. 오후 2시5분 주교단이 퇴장하면서 하관식은 끝났지만 추도객들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줄을 지어 손에 쥔 흙 한 줌을 뿌리거나 국화꽃을 내려놓았다.
7살 아들과 함께 찾은 임수경(34·여)씨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기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용인=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사진=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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