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지구촌] “지난 30년간 미국의 국부는 특정계층에 집중됐다. 우리는 그들에게 조금 더 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점령군의 선언처럼 들리는 이 발언은 피터 오재그 백악관 예산국장이 26일 2010년 예산안 및 향후 10년 재정지출 계획을 의회에 제출하며 한 말이다.
부유층 및 기업 중과세와 중산층 이하 서민을 위한 의료보험 및 교육 개혁을 골자로 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예산안이 ‘로빈훗 예산안’이라는 별명까지 회자시키며 미국 사회를 들쑤시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감세, 규제 완화, 복지 축소의 3가지를 핵심으로 한 레이거노믹스(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가 30년만에 오바마노믹스(오바마의 경제정책)에 의해 종식됐다”고 분석했다.
◇“부유층은 1조달러 더 내라”= 한마디로 오바마 예산안의 핵심은 부유층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서민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소득분포 상위 5%에 해당하는 부유층은 향후 10년간 1조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한다. 1년에 대략 1000억달러 수준. 이중 260만명에 달하는 연 소득 25만달러 이상 고소득층이 앞으로 추가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6360억달러, 기업 증세분은 3530억달러 수준이 될 전망이다. 반면 중·하위 소득계층은 연간 500억달러의 감세혜택을 받게 된다. 예산안은 또 6340억달러 규모의 의료보험 개혁안과 대대적인 교육투자 계획도 담고 있다. 예정대로 실행되면 중·하위 계층의 의료 및 교육비 지출은 대폭 줄게 된다.
오바마는 정치 선언문 같은 서문을 통해 ‘오바마 예산안’의 근거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산층 가정이 규칙을 지키며 책임감 있는 생활을 영위하는 사이 대기업 임원들과 워싱턴 실력자들은 극단적 방종을 보여줬다. 그걸 되돌려 놓아야 한다.”
◇오바마의 힘은 지지율=미 언론들은 ‘1급 정치도박’ ‘미 현대사와의 혁명적 결별’(뉴욕타임스) ‘미국호(號)의 의미심장한 진로 변경’(워싱턴포스트) ‘워싱턴에 돌아온 계급전쟁’(폴리티코) 등의 수식어를 쏟아내며 일제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언론의 충격은 오바마 플랜이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감세 정책을 뒤집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데서 기인한다. 실제 부유층 및 기업 증세율과 서민층 감세율은 클린턴 시절보다 훨씬 더 커졌다. 당시 영부인 힐러리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다 실패한 의료보험 개혁도 더 포괄적 형태로 재추진된다.
계획이 야심찬만큼 반대 목소리도 커 상·하원 통과에는 난항이 예고됐다. 공화당은 벌써부터 오바마 예산안을 두고 “일자리 킬러” “정부 덩치만 키울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오바마의 강력한 정치적 무기는 의회 연설 후 70∼80%까지 치솟은 높은 지지율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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