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1호 공무원 조치현씨 “30년간 모신 장관만 24명”

통일부 1호 공무원 조치현씨 “30년간 모신 장관만 24명”

기사승인 2009-03-01 18:04:01

[쿠키 정치] 국토통일원으로 간판을 달고 1969년 3월1일 출범한 통일부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통일부 1호 공무원’ 조치현(69)씨를 2일 기념 행사에 초대했다. 조씨는 신태환 초대 국토통일원장 명의로 가장 먼저 발령장을 받은 최초의 통일부 일반 공무원이다. 99년 통일교육원 원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30년 동안 그가 모신 장관만 24명. 퇴임 후 첫 통일부 청사 방문을 앞둔 그는 다소 설레는 표정이었다.

“6급 공무원으로 체신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제가 서울대에서 경제학과 행정학을 모두 공부했다고 하니깐 초대 신 원장님이 잘 됐다며 같이 일하자고 했어요. 사실 그때 전 통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5급으로 승진시켜준다는 말에 솔깃해 자리를 옮겼지요.”(웃음) 총무과 서무계장으로 시작한 통일부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장관을 포함해 전체 직원이 45명이었고 예산은 1977만9000원이었어요. 돈이 부족해 예산을 달라고 했는데 돈이 없다고 빌려쓰라고 하더군요.” 그는 첫 해 은행에서 4000만원을 빌려 예산을 충당해야 했다. “지금은 사용할 수 있는 남북협력기금만 1조원이 넘는다지요? 직원도 10배 이상 늘어나고요.” 그의 얼굴에는 잠시 뿌듯함이 어렸다.

초기 통일부는 반공주의에 입각한 통일 연구와 교육에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여했다고 한다. “직원 중에 박사가 많다보니 초대 원장이 정부에 업무를 설명할 때 ‘우리 직원 학력이 정부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자랑하곤 했지요.” 조씨가 교육담당관으로 일하던 84년에는 강원도 고성에 150억원의 예산을 들여 통일전망대를 지었다.

87년 직선제 개헌운동과 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후 북한에 대해 바로 알려는 운동이 확산됐다. 정보자료국장으로 근무하던 89년 이런 사회 분위기에 발 맞춰 일반인이 북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북한자료센터를 마련했다.

“90년대 통일부는 남북고위급 회담의 통로이자 대북협력지원 창구로 점차 자리를 잡아갔어요.” 이 기간 남북회담사무국 자문위원과 통일교육원 교수를 맡았던 조씨는 남북 대화의 물꼬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퇴임 직후인 2000년에는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두 손을 잡는 것을 TV로 지켜봤다. 큰 감격이었으나 그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다.

“노무현 정부 이후 통일 정책 없는 대북 정책만 경쟁적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통일부는 분단국가에 없어선 안될 부처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정권에 따라 존폐 논의가 나온다는 것 자체는 우리 사회가 통일을 정략적으로, 이념적으로 도구화하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조씨는 지난해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불거졌던 통일부 폐지론에 대해 강경한 어조로 비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강주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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