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7월15일부터 11월26일까지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서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메일을 보낸 것은 5차례. 이 중 한 건은 촛불 사건 몰아주기 배당 논란과 관련한 간담회를 갖자는 내용이고 한 건은 서울지법 내 모든 판사들에게 보낸 것이다.
‘외압’ 의혹을 받고있는 문제의 메일은 10월14일, 11월6일, 11월24일에 보낸 세 통이다. 이들은 ‘야간집회 금지 규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기 위해 중단한 촛불관련 재판을 계속 진행하라는 취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은 야간집회를 명백히 금지하고 있어 재판을 그대로 진행할 경우 유죄 선고가 불가피하다.
박재영 전 판사가 지난해 10월9일 야간집회 금지규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지 5일 만에 신 대법관은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라”는 외압성 메일을 보낸 셈이다.
신 원장이 ‘대법원장 업무보고’라는 제목으로 14일 보낸 메일에는 “위헌 제청을 한 판사의 소신이나 독립성은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써 있다. 마치 위헌 제청과 심판을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또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해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우리 법원 항소부에서는 구속사건에 대하여는 선고를 할 예정으로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위헌 제청이 된 조문과 관련된 사건 처리의 결정권이 해당 판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강요한 것이다.
약 20일 후인 11월6일 신 원장은 아예 ‘야간 집회 관련’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메일을 보냈다. 신 원장은 “모든 부담되는 사건들은 후임자에 넘겨주지 않고 처리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며 “우리 법원 항소부도 위헌 여부 등에 관해 여러 고려를 할 것이기 때문에 사건을 적당한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어떠냐”고 썼다.
또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외부의 여러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24일에도 “피고인이 조문의 위헌여부를 다투지 않고 결과가 신병과도 관계가 없다면 통상적인 방법으로 종국하여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주십사고 당부드린다”며 다시 한번 사건 진행을 강조했다.
신 대법관은 본인도 이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 듯, 이메일의 서두에 이 내용을 대내외에 비밀로 할 것과 본인이 직접 읽어보라는 뜻의 ‘친전’이란 한자어까지 달았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사법 파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한 판사는 “인사권자가 재판 방향에 대해 일일이 의견 제시를 하는 것은 사법권 침해”라며 “위헌제청을 한 사건에 대해 한쪽의 결론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메일을 수차례 보냈다는 건 정말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대외비 이메일을 언론에 공개한 것 자체가 이번 사태를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면서 “대법원이 이번 사태의 진상을 확실히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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