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야구가 일본에 통쾌한 설욕전끝에 1위로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면서 이승엽을 대체한 신(新)4번타자 김태균, 완봉승의 주역 투수 봉중근, 지장 김인식 감독 등이 팬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다.
하지만 상대팀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WBC에서 국내팬들의 관심과 지지를 모으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적장인 일본팀의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다.
하라 감독은 모두가 알다시피 이승엽이 몸담고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트 감독이다. 시즌 중에도 부진한 이승엽을 묵묵히 신임하는 자세를 보여 한국팬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하라는 그러나 국가대항전인 WBC에서 일본대표팀 감독으로 나왔지만 흔히 볼수 있는 기싸움이나 상대팀 자극하기 등의 발언없이 깔끔한 매너와 겸손함을 보여줘 “진정한 덕장”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하라의 경기후 인터뷰 내용은 문학작품에 나올만한 멋진 멘트가 많아 타팀 감독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하라 감독은 9일 우리나라와의 순위 결정전에서 1-0으로 석패한 뒤 “한국투수의 공을 좀처럼 칠 수 없었다”고 깨끗이 완패를 인정했다. 하라 감독은 이어 “아시아의 대표로서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 야구를 세계에 알린다는 목적 하에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한다. 가슴과 가슴을 부딪히는 힘과 힘의 대결로 도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라 감독의 이 말은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잇달아 퍼날라지면서 일종의 ‘하라 어록’으로 회자되고 있다. 네티즌 qnpjzg는“정말 멋진 말이다. 이런사람보면 사람보다 그냥 큰산같다”고 말하는 등 네티즌 사이에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앞서 일본이 한국을 14-2 콜드게임으로 이길때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하라 감독은 한국과의 첫경기에 대승을 거둔 뒤 “이기긴 했지만 한국에 대한 열등감이 이 경기 하나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과는 자주 만날 것”이라고 발언했다. 라이벌에 콜드승으로 대파한 뒤에 흔히 나올만한 우쭐한 멘트는 전혀 없었다.
하라 감독의 매너와 화술이 돋보인 것은 바로 다른 일본 선수 및 감독의 오만한 발언과 대비돼서다. 일본의 천재타자 스즈키 이치로는 3년전 열린 제 1회 WBC 경기에서 “(한국 등이) 일본을 30년동안 이길수 없도록 하겠다”고 말해 국내 야구팬의 공분을 자아냈다.
베이징 올림픽때 일본팀을 이끈 호시노 감독도 우리나라와의 경기에 앞서 “(한국의 4번타자) 이승엽이 누구냐. 한국은 (베이징올림픽예선에서처럼) 이번에는 위장타순을 꾸리지 마라”고 빈정댔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하라 감독의 겸손함이 우리대표팀의 경기력을 해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한일전의 특수성 상 일본 선수나 감독이 자극적인 발언을 해야 대표팀의 단결력이 높아지는데 하라 감독의 점잖은 매너로 자칫 승부욕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고세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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