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처음 제한급수 땐 불편해서 미칠 것 같았는데 이제는 조금이라도 물이 나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는 고지대 주민들은 정말 불쌍합니다.”
9일 오후 1시쯤 찾아간 태백시 철암동 고지대 주택가. 전수자(64·여)씨는 쌀쌀한 날씨에도 바지를 걷어부치고 맨발로 빨래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씨는 “물이 거의 나오지 않아 매일 물을 길어 나르고 손빨래를 하느라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며 “미루고 미루다 올 겨울 들어 처음 이불빨래를 해 집안이 난장판이 됐다”고 말했다.
전씨가 거실과 부엌, 세탁실 등 집안 곳곳에 물을 받아놓은 다라 항아리 등 용기는 자그마치 30∼40개는 됨직했다. 물을 아껴쓰기 위해 화장실 앞에는 스테인레스 요강을 놓아 소변을 따로 보고있다.
전씨는 “비를 기다리다 지쳐 이제는 비님아 제발 좀 시원하게 내려다오”라고 기도까지 한다고 말했다.
고지대 마을 공터에는 물탱크가 설치돼 있어 하루 한번씩 차량으로 물을 채워준다. 그러나 고지대 주민 대부분이 독거노인이거나 고령의 부부라 이마저도 갖다 먹기가 쉽지않다.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는 이현희(82·여·철암동)씨는 “문 앞에 물그릇을 내놓으면 군인과 공무원들이 물을 갖다줘 고맙다”고 말했다.
물 부족으로 불편을 겪기는 일선 학교도 마찬가지다. 태백기계공고 학생들은 수돗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실습 후 손을 씻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100여명의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는 기숙사는 고원지대의 쌀쌀한 날씨 속에 찬물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이모(18·2년)양은 “찬물로 머리 감으면 내 머리인지 모를 정도로 뻐근하다”며 “더구나 야외 화장실은 춥고 무서워 가기 싫지만 눈 질끈 감고 다녀오곤 한다”고 말했다.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주서연(31·여·구문소동)씨는 “우유병을 소독할 물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더러워진 옷을 세탁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며 “아이 키우기가 몇배나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이발소도 1960년대로 돌아갔다. 물이 나오지 않아 순간온수기를 쓸 수 없기 때문에 연탄불에 물을 데워 손님 머리를 감기고 있다.
태백시는 이날까지 57일째 제한급수를 실시하고 있다.
1400가구 3500여 주민들에게 물 뒷바리지를 하고 있는 철암동사무소 권태유(53) 사무장은 “초기에 주민들의 불만과 혼란이 컸지만 이제는 현실을 이해하고 최대한 물을 절약하며 생활하고 있어 고맙다”며 “정부에서 노후관 교체 등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문소동 주중원(60) 통장은 “최악 사태에 대비, 생수 지급을 2주에 한번으로 줄이겠다는 통보를 받았고 15t 트럭 4대도 마련해 물을 실어나를 준비까지 하고 있다”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기상청의 날씨 예보는 암담하기만하다.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이번 가뭄이 5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태백시는 “46%대에 달하는 상수도 누수율을 줄이기 위해 노후관을 교체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300억원 정도의 사업비를 정부가 나서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태백=국민일보 쿠키뉴스 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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