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취임한 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 과거사 정리, 법관 인사기준 변경, 구술변론·공판중심주의 활성화 등 강도높은 개혁을 추진했다.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라는 목표 아래 시행됐던 각종 개혁은 그러나 판사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행정적 측면을 중시토록 만들면서 재판 개입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 역시 사법행정 지시가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신 대법관의 행위를 ‘정당한 사법 행정’ 혹은 ‘부당한 재판 간섭’으로 보느냐가 핵심 쟁점이었다.
서울남부지법 김형연 판사는 17일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라는 구호 아래 사법부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사법부 조직에 행정부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다”며 “각급 법원이 경쟁적으로 실적을 홍보하고 판사들을 사건처리율, 조정 성공률 등 통계 수치와 관련한 경쟁으로 몰아넣었다”고 말했다. 같은 법원 김영식 판사도 “아이러니하게도 그간 추진돼온 사법 개혁으로 법관들은 근무평정, 절차개선 등 사법행정에 예속됐다”며 “이런 상황이 법원장 등이 개개 재판에 관여하는 근거가 됐다”고 지적했다.
각 지방법원에서는 법원장이 영장발부율, 조정 성공율 등을 주문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 “도대체 재판 개입과 사법행정의 기준이 뭐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방법원에 근무했던 한 판사는 “법원장이 영장기각률 등 통계에 민감해 판사들도 실적을 위해 영장기각률, 조정 성공율 등의 통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이 법원의 지난해 영장기각률은 전국 평균보다 10%이상 높았다.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는 “이용훈식 사법개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별 법관을 행정적으로 옥죄는 개혁이었다는 점”이라면서 “대법원장은 법관을 법원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데 오히려 규제 대상으로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이 대법원장의 사법 개혁에 제동이 걸려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구술변론·공판중심주의는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사법부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라면서 “법원행정처가 유사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을 약속한 만큼 사법 개혁은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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