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유공자, 29년 만에 살인범 누명 벗었다

5.18 유공자, 29년 만에 살인범 누명 벗었다

기사승인 2009-04-06 19:33:01

[쿠키 사회]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을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참여했다가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박문규(당시 18세)씨가 29년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6일 광주시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 안장됐다.

5·18 직후 경찰의 가혹한 고문에 못이겨 박씨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실형을 선고받고 1년 가까운 옥살이를 한 이정근(64)씨는 동시에 ‘살인범’의 누명을 가까스로 벗었다.

박씨와 이씨의 회한 어린 사연은 29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남대 농대 1학년이던 박씨는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며 아들의 안전을 걱정하던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고향인 전남 영암으로 내려왔다. 이 때문에 열혈청년이던 박씨는 계엄군의 만행을 먼곳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박씨가 계엄군과 맞설 ‘총’과 ‘실탄’을 손에 넣기 위해 영암경찰서 신북지서 무기고를 털려고 행동에 나선 것은 5월23일 밤.

그러나 부모님의 감시를 피해 친구 4명과 집을 빠져나온 박씨는 몇시간 뒤 신북면 이천마을 저수지 인근에서 싸늘한 사체로 발견됐고 마을 뒷산에 아무렇게나 묻혔다.

5·18 직후 유족의 요구에 따라 사인규명에 나선 경찰은 대학생 신분인 박씨의 사인이 계엄군에 의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사후수습이 복잡해질 것을 우려해 박씨 일행과 23일 밤 ‘담배불’을 놓고 사소한 시비를 벌였던 이씨에게 허위자백을 강요했다.

이씨는 5월27일 해남경찰서 옥천지서 무기고를 턴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상태였고 20여일간의 모진 구타를 못이겨 자포자기로 결국 혐의를 인정했던 것.

박씨 유족들도 이후 이씨를 용서하지 못할 ‘원수’로 여기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왔다.

하지만 26년이 흐른 2006년 박씨가 이씨에 의해 살해된 것이 아니라 계엄군에 의해 숨졌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김정길(64) 5·18명예회복추진위원회장으로부터 전해듣고 귀를 의심했다.

‘진실찾기’에 나선 박씨 유족들은 다수의 정황증거를 확보한 김 회장과 일관되게 ‘누명’을 뒤집어썼다고 주장해온 이씨의 각고의 노력에 감동해 박씨의 죽음에 뒤늦게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탓인지 진실은 쉽게 밝혀져지 않았고 결국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유족과 이씨의 탄원에 따라 지난해 6월 이씨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을 정부에 권고하게 됐다.

그 결과 그동안 유족들이 수차례 제기한 5·18유공자 신청에도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았던 광주시 5·18보상 심의위원회가 지난해 12월부터 진행한 6차 보상심의에서 박씨와 이씨가 모두 5·18희생자라는 사실을 우여곡절 끝에 인정한 것이다.

당시 함께 무기고를 털려고 시도했던 박씨 친구 4명의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이날 유족들과 함께 박씨의 유해를 5·18민주묘지에 이장한 이정근씨는 “살인 누명을 벗었고, 박씨의 명예회복까지 할 수 있게 돼 여한이 없다”며 “앞으로 박씨의 가족들과 형제처럼 살겠다”고 말했다. 광주=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장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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