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주민의 직접 투표로 시장과 도지사를 뽑은 지 14년이 지났지만 많은 광역자치단체가 관선 시절의 상징인 '관사(官舍)'를 고수하고 있다. 1년에 수천만원의 예산을 관리비로 쓰는 관사도 적지 않다. 민선단체장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관사를 두는 것은 '권위주의 답습'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집 있지만 '출·퇴근 불편해서' 관사 이용=정보공개센터(소장 하승수 변호사)가 22일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로부터 입수한 '관사 운영현황'에 따르면 경남 대구 대전 울산 제주를 제외한 11곳의 시장과 도지사가 관사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사가 시장, 도지사가 살고 있는 집과 멀어 어쩔 수 없거나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관사가 필요하는 이유에서였다.
강원도 관계자는 "도지사 자택이 동해여서 도청이 있는 춘천까지 거리가 멀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관사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경기도 측도 "도지사 자택은 부천이고 도청은 수원에 있어 출퇴근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다"고 말했다. 충북·충남·전남·경북도와 광주시도 같은 이유를 들었다.
한양대 행정학과 유재원 교수는 "단체장을 중앙정부에서 임명할 때는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이 1∼2년 머물다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관사가 필요했을지 몰라도 현행 민선제에서는 해당 지역 사람을 단체장으로 뽑는데 관사가 필요할 이유가 없다"며 "세금으로 단체장의 거주 문제까지 해결해 주어야 하느냐"고 말했다.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으로서 관사가 필요하다는 곳도 있었다. 부산시 측은 "관사는 제2의 집무실"이라며 "1주일에 2차례 야간 아이디어 회의가 있고, 외국 손님 접대, 시 주관 여러 행사를 관사에서 한다"고 설명했다. 전북도도 손님 접대 차원에서 관사 초청 행사가 많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지자체는 연간 공식행사가 몇 번 있는가를 묻자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서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하 소장은 "업무상 손님 접대나 공식회의는 관청이나 외부 시설을 이용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며 "1년에 몇 번 있는 행사 때문에 수천만원을 들여 관사를 관리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세면대 490만원, 신발장 210만원, 전기료 월 100만원=각 지자체가 공개한 '관사 운영현황'에 따르면 전남 무악군 삼향면에 있는 전남지사의 관사는 222.04㎡(약 67평)이지만 전기세, 수도세, 상하수도 요금 등 연간 기본적인 관리비만 2250여만원을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지사 관사에는 490만원짜리 세면대와 210만원짜리 신발장, 22만원짜리 의자 90여개가 비치돼 있다. 전북지사 관사는 한달 전기료로만 100만원 넘게 지출하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관사가 1971년에 지어진 노후건물이라 구조적으로 단열에 취약해 전기료가 과하게 소요됐다"며 "지난해 1월 전등을 교체하고 이중창을 설치해 예산을 절감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등 교체 등 시설정비에는 400여만원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됐다.
강지형 참여자치연대 국장은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지차체마다 불필요하게 새나가는 돈을 절약하고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관사를 어떻게 운영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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