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월13일. 독서실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선 막내딸 혜희(당시 18세)양이 귀가길에 감쪽같이 사라진 뒤 송길용(56)씨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10년 동안 아이를 찾기 위해 전국을 다니면서 송씨는 직업을 잃고, 살던 집을 잃고, 건강을 잃었다. 아내는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5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척과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지금 송씨에게 남은 건 혜희양의 사진이 붙여진 1t 트럭과 카드빚 수천만원 뿐이다.
7일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만난 송씨는 “딸이 없어진 후 모든 게 달라졌다. 넉넉하진 않았어도 단란한 가정이었는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가정의 달, 5월은 ‘가혹한 달’이다. 가족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정신적 충격과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이혼해 결국 가정해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실종 문제가 장기화되면 70∼80%는 이혼하거나 자살하는 등 가정이 파탄난다”며 “장기 실종자 가족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99년 4월14일 현장학습을 다녀오던 길에 집 앞에서 사라진 지현(당시 9세)양의 아버지 윤봉원(48)씨 사정도 송씨네와 다를 바 없다. 경찰은 수사 착수 3개월 만에 사건을 가출로 처리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아이를 찾는 건 온전히 윤씨 부부의 몫이었다.
윤씨 부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죄책감과 어디에도 기댈 수 없다는 막막함 때문에 말다툼이 잦아졌다.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고통은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졌다. 윤씨 부부는 현재 9년째 별거 중이다.
실종가족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이 제공하는 연간 상담비 300만원이 전부다. 그마저 잘 몰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회장은 “실종자 가족 중 정부로부터 상담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2005년 제정된 실종아동보호법은 실종아동의 가족지원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은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가족이 해체되지 않도록 사회복지 인력과 재정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송씨는 낮에는 일당 6만원의 노동일을 하고 저녁부터 혜희양의 사진이 담긴 전단지를 돌린다. 사진 속 혜희양은 고등학교 3학년 모습 그대로지만 송씨의 삶은 10년 새 너무 많이 달라졌다. 송씨는 “내가 죽어야 잊는거지 살아서는 절대 못 잊는다. 찾을 수 있다는 희망마저 잃지 않도록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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