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거대한 난민촌 된 쌍용차 공장…불안,긴장,분노의 혼재

[르포] 거대한 난민촌 된 쌍용차 공장…불안,긴장,분노의 혼재

기사승인 2009-06-07 21:26:01


[쿠키 경제]
7일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은 거대한 '난민촌'이었다. 1000여명의 쌍용차 노조원들은 2주째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인 공장 안에서 먹고 잔다. 수염은 덥수룩했고, 몸에선 땀냄새가 풍겼다. 지쳐 보였다. 공권력 투입 시기가 다가오면서 긴장과 불안,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악'만 남은 듯 눈빛은 매서웠다.

공장 정문은 2층으로 쌓인 컨테이너 박스에 막혔다. 노조원 3∼4명이 출입자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공장 안은 의외로 적막감이 돌았다. 어지럽게 널려 있는 '정리해고 철폐' 현수막 앞으로 파업 중인 '아빠'를 만나러 온 아이들 몇몇이 킥보드를 타거나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노조원들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씩 흩어져 본관, 차체공장, 정비공장 등을 점거하고 있었다. 본관 1층 출입문에는 '경찰력에 맞설 선봉대를 모집한다'는 대자보가 붙어 있었고, 수십 자루의 죽봉도 보였다. 로비 계단 복도 등에 붉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앉아 있던 노조원들이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도장공장의 70m 높이 굴뚝 위에는 노조원 3명이 26일째 농성 중이다. 식사는 밧줄로 올려준다고 했다. 각 공장 건물로 이어진 길목은 철제 시설물들로 쌓은 바리케이드로 봉쇄됐고, 화재에 대비한 듯 소화기도 잔뜩 놓여 있었다. 공권력이 투입되면 극단적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다.

정비공장에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란 민중가요가 흘렀다. 벽면을 따라 수건 속옷 양말 등이 널려 있었고, 둘러앉아 라면을 먹는 노조원들도 눈에 띄었다. 일부는 바닥에 깔려 있는 은박 돗자리 위에서 바둑을 두거나 신문을 보고, 잠을 잤다. 이들은 매일 오전 6시30분에 기상한 뒤 하루 2∼3차례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고, 토론도 벌이다가 밤 11시 소등과 함께 취침한다. 불시에 공권력 투입에 대비한 훈련도 열린다고 했다. 사이렌이 울리면 5분 안에 공장 정문으로 집결하는 연습이다.

정비 15년차인 김모(45)씨는 "난민촌이 따로 없다. 이런 생활이 한 달이 될지, 두 달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며 "회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지만 우리도 돌아갈 길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의 집으로는 지난 5일 해고통지서가 배달됐다. 그 옆 다른 노조원은 "평택 시장도, 정치인들도 와서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차체공장 입구에는 길이 2m가 넘어보이는 쇠파이프가 수북했다. 이모씨는 "공권력이 들어온다는 데 맨몸으로 싸울 수는 없지 않느냐"며 "최소한의 자위권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담배를 피우던 박모씨는 "우리는 폭도도 아니고 사상적으로 무장한 것도 아니다"며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다보니 공권력이 들어올 거면 차라리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많다"며 "두렵지만 물러설 생각도 없다"고 전했다.

정리해고 명단에서 빠진 24년차 노조원은 "가족들이 전화를 걸어 '(공장에서)나오라'고 사정한다"며 "계속 일하라는 통보는 받았지만 동료들을 생각하면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건물 벽면으로는 '배신자' '배반' 등 붉은색 글귀가 쓰여 있었다. 공장을 점거한 노조원, 파업에서 이탈한 노조원 간의 골이 깊어진 듯했다. 한 노조원은 "앞으로 사태가 해결된다고 해도 서로 간에 쌓인 상처나 앙금은 쉽게 씻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측은 8일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로서 노사 대화는 끝났다. 바리케이드에 막힌 출입구처럼 쌍용차의 미래도 꽉 막혀 보였다. 평택=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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