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깜짝 등장한 김혜수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깜짝 등장한 김혜수

기사승인 2009-06-07 15:31:01

[쿠키 문화]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개막을 이틀 앞둔 5일 오후 1시(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현지의 팔라초 제노비오 전시장.

과거 궁전이었던 이 건물의 넓은 정원 한쪽에서는 이주향 수원대 교수가 제자리에서 ‘오체투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는 다른 여성이 발을 모은 채 양팔을 수평으로 들어 머리 위까지 올렸다가 내리는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었으며, 그 아래쪽에서는 백인 청년이 시지프스 신화에서 차용한,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작을 역시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이들이 행위예술을 벌이는 내내 ‘정선 아리랑’ ‘따오기’ ‘오빠 생각’ 등 한국적 정서가 가득 담긴 노래들이 스피커를 통해 이국의 공간에 울려 퍼졌다.

이윽고 목까지 단추를 채운 검은 제복의 사내가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나타나 온통 붉은 천으로 덮인 리프트 위에 올라탔다. 리프트가 서서히 올라가 10여m 상공에 다다르자 이 사내는 돌연 손을 번쩍 들어 준비해 둔 사진 뭉치를 아래쪽으로 마구 뿌려댔다. 하늘은 온통 눈송이처럼 휘날리는 사진들로 뒤덮였고, 밑에서 이를 바라보던 100여명의 관람객들은 돈다발이라도 되는 양 사진을 줍기 위해 우왕좌왕했다. 이렇게 뿌린 사진이 1만장. 한 시간 동안 진행된 김아타(53)의 기이한 퍼포먼스 ‘2009 GAIA’(가이아·대지의 신)는 이렇게 피날레를 장식했다.

한국의 손꼽히는 사진작가 김아타가 이날 퍼포먼스를 신호탄으로 베니스 현지에서의 특별전을 시작했다. 그는 “가장 위대한 퍼포먼스는 한 인간의 일생”이라며 “그걸 짧은 시간에 함축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동양철학에 기반한 다분히 명상적이고 초월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김아타의 특별전 제목은 ‘온 에어’(ON-AIR).
제노비오 전시장 1·2층에는 그가 2002년부터 진행 중인 온 에어 프로젝트 작품들이 신비로운 아우라를 발산하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대표적 작품은 ‘인달라 시리즈’다. 그는 지난해 5월부터 6개월여 동안 뉴욕, 파리, 로마, 도쿄, 모스크바, 프라하, 델리 등을 순회하며 한 도시당 1만컷씩의 사진을 찍은 뒤 그 모든 이미지들을 겹치고 포개 단 하나의 이미지로 만드는 독창적인 작업을 벌여왔다. 1만컷의 이미지가 합쳐진 회색 톤의 최종 이미지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을 표상한다. 김아타가 퍼포먼스에서 뿌린 사진들이 바로 인달라 시리즈에 사용된 이미지들을 한지에 프린트한 것이다. 이밖에 한 컷에 8시간씩 노출을 준 도시 사진 연작들, 얼음으로 만든 파르테논 신전이 녹아내리며 파괴되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물 등 총 22점이 베니스 비엔날레 폐막일인 11월22일까지 각국의 관람객들을 맞는다.

김아타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세상의 모든 현상과,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작업이 온 에어 프로젝트”라며 “사진을 매개로 조각과 설치, 미디어 등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전개하는 아티스트로서 이번에 내 모든 역량을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베니스 비엔날레 공인 특별전은 비엔날레 사무국 및 이사회의 심사와 승인을 거쳐 총감독이 최종 결정하는 매우 까다롭고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김아타 이전에 한국 출신 작가가 특별전을 개최한 경우는 2007년 서양화가 이우환이 유일하다. 김아타의 특별전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추천 및 후원, 영국 런던에서 활약해온 독립 큐레이터 이지윤씨와 갤러리 학고재의 기획으로 성사됐다.

한편 이날 퍼포먼스 행사장에는 배우 김혜수씨가 관람객으로 깜짝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김씨는 취재진의 질문에 “2년 전쯤 우연히 김아타 선생님의 초창기 작품 ‘인간문화재’ 시리즈를 감상하게 된 게 계기가 돼 팬이 됐다”고 작가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김씨는 지난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도양홀에서 개최된
제4회 서울오픈아트페어(SOAF)에 전문가 수준의 미술작품 ‘raining again’ ‘into the deep’ ‘눈부심, 혼란’ 등 5점을 출품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진 이미지를 화폭에 오려붙이는 콜라주 기법이 가미된 표현주의적 작품들이었다.

김씨는 “전업작가를 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작가라는 호칭이 아직은 좋지도 싫지도 않다. 미술을 잘 모르고 솔직히 개념이 없다”면서 “하지만 그림을 굉장히 좋아하고 정말 하고 싶어지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베니스=글·사진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
김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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