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는 1987년 1월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었던 고(故) 박종철씨가 경찰 고문으로 숨지자 정부가 국가안전기획부장,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등으로 구성된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최소 2차례 열었다고 밝혔다. 이어 수사를 실제 고문을 자행한 치안본부(현 경찰청)가 맡게 하는 등 사건 은폐·조작에 개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당시 검찰은 부검으로 진상을 충분히 파악하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정부 압력에 굴복해 수사를 치안본부로 이관했다. 검찰은 87년 2월 고문에 가담한 추가 공범 3명의 존재를 알고도 수사하지 않는 등 직무를 유기했다. 이는 당시 정부관계자 증언과 판결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 등 자료조사를 통해 드러났다고 진실화해위는 덧붙였다.
박씨는 87년 1월 강제 연행돼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수배자인 박종운씨의 소재를 대라는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졌다. 이 사건으로 고문에 가담했던 수사관 등 실무자 5명과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간부 4명이 처벌됐다.
하지만 박씨 유족은 정부 관계자들이 진상을 은폐·조작하려 한 점이 해명되지 않았다며 2006년 11월 진실화해위에 진상규명을 신청했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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