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자동차 부품업체 D사에서 일하는 김모(35)씨는 다음 달 '실업자'가 된다.
근로 계약기간 2년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한 달 150만원 안팎을 받는 비정규직이지만 그는 업무가 마음에 들었고,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졌다. 무엇보다 아내와 네살배기 딸을 생각하면 계속 일하고 싶다. 회사도 김씨를 잡고 싶어한다.
D사 관계자는 "회사 형편이 어려워 당장 정규직 전환은 힘들지만 비정규직 고용기간 제한만 없으면 근무 태도가 우수한 김씨를 내보내기 싫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다음달 1일부터 2년 이상 같은 직장에서 일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을 경우 잘린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위기의 6월을 보내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겠다고 만든 비정규직보호법은 일자리를 빼앗는 흉기가 됐다. 7월이 오기 전 해법이 나오지 않으면 비정규직 대량 실업 사태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더욱이 경기 침체가 깊어지면서 상당수 기업은 축소 경영이 불가피해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은 더 위협받고 있다. 비정규직의 대량 실직(계약 해지)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는 537만여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3% 정도다. 그 가운데 다음달로 '2년 이상 근무' 조항에 해당되는 비정규직은 70만∼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차례로 실업자 신세가 되면 사회 고용 불안은 물론 심각한 사회 불안을 초래할 우려마저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야 정치권, 재계와 노동계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며 각을 세우고 있고, 6월 임시국회 처리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치권은 노동자의 실업문제를 제나름대로의 명분으로 포장,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4월 현행 2년인 비정규직 고용시한을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내놨다. 당장의 대량 해고는 막고보자는 응급 처방이다. 한나라당은 고용시한을 2년으로 정한 비정규직법 시행 시기를 4년 유예하는 쪽으로 당론을 모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에 대해 '약자의 일자리를 뺏는 MB악법'으로 규정, 결사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정부안에 대체로 찬성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있는 기업 24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 7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비정규직 사용기간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55.3%의 기업이 비정규직을 전원 또는 절반 이상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고용기간을 늘리면 82.8%가 해고 대신 계속 고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정규직보호법이 '비정규직해고법'으로 변질된 셈이다. 정부가 제출한 비정규직법 고용기간 4년 연장안은 54.5%가 찬성했다. 2∼4년 유예안이 바람직하다고 답변한 기업은 32.8%였다.
비정규직의 고용기간 제한에 중점을 둬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다수의 견해다. 고용시한이 4년으로 연장되거나 시행이 유예된다고 해서 비정규직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4년 후면 또 다시 비정규직 대량 해고 위기가 재발되는 '해고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동원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2년이나 4년 등 비정규직 채용에 기간 제한을 두기보다 비정규직 차별 금지를 확대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처우를 비슷하게 맞춰 비자발적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면 소득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도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손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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