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개성공단 입주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철수 결정을 내린 모피의류 생산업체 스킨넷 김용구(41·사진) 대표는 9일 "지난해 여름 이후 주문량이 급감한데다 올해 봄 통행 차단 조치를 겪은 뒤에는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가 억류되는 걸 보고 철수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서울 구로동 사무실 벽에는 2007년 통일부에서 받은 남북협력사업자 승인증, 의류 관련 특허증, 모범중소기업증이 걸려 있었다. 제품을 주문하는 바이어와 상담 전화로 분주했다는 사무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지난해 여름 갑자기 주요 거래처에서 주문이 끊기더라고요. 왜 그런가 하고 알아보니 '남북 관계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개성공단에서 제품 만드는 업체에 일을 맡기는 건 불안하다'는 겁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발생 직후 주문량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2007년 100억원에 달하던 매출이 지난해 68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때만 해도 김 대표는 "남북 관계가 나아지면 주문량도 다시 늘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개선의 기미가 없었다. 지난 3월 키리졸브 한·미 연합군사훈련 기간 북측의 통행 차단 조치로 소속 직원 1명이 개성공단에 발이 묶였다. "그 직원의 아내가 밤새 울고 퉁퉁 부은 얼굴로 회사를 찾아왔어요. 곧 돌아올 거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옷 만들다가 사람 잡겠다'는 회의가 들더군요."
개성공단 공장에 있던 특수 미싱 50대 중 10대를 남측 파주 공장으로 우선 옮겼다. 얼마 뒤 유씨가 붙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는 개성공단 철수를 결정했다. "개성공단이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면 다시 올라갈 생각입니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어서…." 김 대표는 말끝을 흐렸다.
조심스러운 부분이에요. 북측 근로자들에게는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우리 근로자들이 거기 상주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을 잘못 하면 혹시 우리 직원들한테 피해가 갈 지도 모릅니다." 그는 북측 근로자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북측의 통행차단과 직원억류 조치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않은 듯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 업체 철수가 다른 기업에 악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철수해도 손실이 적은데 다른 업체는 투자액이 많아 철수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1994년부터 직접 모피의류 생산을 시작한 그는 관세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2007년 9월부터 개성공단에서 공장 운영을 시작했다. 본사와 가까운 거리와 낮은 인건비도 투자 요인이었다.
그러나 김 대표는 결국 전날 오전 공단 측에 폐업신고서를 냈다. 그는 이달 말까지 인력과 물자를 모두 철수할 예정이다. 그를 만류하는 당국자는 없었다고 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주화 기자, 사진= 홍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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