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손때가 묻은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다. 별로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나무로 만든 가구의 모서리 등 마무리가 더없이 부드럽다. 앉으면 편안하다. 사람의 신체 구조와 활동 반경을 감안해 만들었으니 실용적이다. 앞에 미술작품까지 놓여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림 감상과 함께 머리를 식힐 수 있으니 벽걸이 TV가 필요없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8월7일까지 열리는 ‘인테리어’ 전의 풍경이다. 생활 공간 속에서 가구와 미술이 어떻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하는지 보여주는 전시다. 장 푸르베, 샤를로드 페리앙, 세르주 무이, 조지 나카시마 등 20세기를 이끈 디자이너와 이우환 이기봉, 데미안 허스트, 애니시 카푸어, 조널드 주드 등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만났다.
데미안 허스트의 원형 그림 앞에 놓여진 장 푸르베의 직사각형 탁자와 의자는 세련되면서도 지적인 아트 디자인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장 로이에르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연두색 의자 또는 소파에 앉아 앞 벽면에 걸린 애니시 카푸어의 붉고 둥근 조각 작품을 느긋하게 보고 있노라면 휴식 중에서도 뭔가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떠올리게 되는 열정에 사로잡힌다.
원목을 사용해 나무의 결과 선으로 만든 자연적인 가구 디자인으로 유명한 조지 나카시마의 작품과 이우환의 그림 ‘조응’의 만남도 조화를 이룬다. 세계적인 조명기구 디자이너인 세르주 무이의 조명 작품이 두 작품을 더욱 빛낸다.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커다란 곤충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칼더의 움직이는 조각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조명 기구가 이색적이다.
이기봉의 흑백 풍경 그림과 장 푸르베의 가구, 세르주 무이의 조명도 고급 응접실이나 잘 꾸며진 서재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데미안 허스트의 설치작품과 장 푸르베·샤를로드 페리앙의 뒤로 반쯤 눕는 의자의 만남도 현대미술과 가구의 균형있는 접목을 보여준다. 르 코르부지예·샤를로드 페리앙의 칠판과 장 푸르베의 가구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들이 개별적으로 전시되기는 했으나 현대미술과 함께 선보이는 것은 드물다. 국제 비엔날레 등에서나 볼 수 있는 기획전이다. 국제갤러리 이현숙 대표는 “이번 전시에 작품이 나온 대부분 디자이너가 이미 숨진 상태이고, 작품도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작품 일부는 자체 소장품이고 나머지는 세계 유수의 컬렉터에게서 빌려왔다”고 말했다.
유명 작가의 가구와 그림을 한꺼번에 구입해 집안에 둘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격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만만치 않다. 사는 것은 어렵더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재웅 디자이너는 “아트라는 게 별 것 아니다. 이제 가구도 예술이다. 꼭 고급 가구가 아니더라도 집안을 감성적으로 꾸미는 실용 디자인을 제시하는 전시”라고 설명했다(02-735-8449).글·사진=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광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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