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명박아, 음식 준다고 받아먹지말고 거저 돕고 오너라.”
10대 소년 이명박에게 이웃집 허드렛일을 도와주라고 등을 떠밀던 어머니 채태원(1964년 작고)씨는 대가를 바라지 말고 남을 도울 것을 거듭 당부했다.
이 대통령이 1995년 펴냈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는 어머니 채씨가 이 대통령에게 남겨주려했던 가치가 무엇인지 곳곳에서 엿볼수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에서 태어난 어머니 채씨는 유교적 가풍이 엄격하던 경주 이씨 집안으로 시집와서도 신실한 신앙생활을 했다고 이 대통령은 적고 있다.
채씨는 새벽4시에 일어나 기도를 했다. 자신보다는 주로 남을 위한 기도였다.
나라와 사회를 위한 기도에서 시작해 주변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이어지다 정작 자신을 위한 기도는 하지 못하는 이 대통령의 기도 습관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성장과정에서 한때 가출을 하려 했다가 자제한 것도 어머니가 쌓은 새벽기도의 힘이었다고 전했다. 과일 ‘리어카’ 장사를 했던 이 대통령은 가출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고 한다.
이웃에 봉사하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가짐을 중시했던 채씨는 학교를 마친 뒤 시장에 들른 이 대통령에게 자주 봉사를 권유했다고 한다. 때론 엄한 훈계도 잊지 않았다.
“도와줬다고 물 한 모금이라도 얻어먹으면 안돼. 음식을 준다고 받아왔단 봐라. 알아들었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은 남을 그냥 도와주는 일이 얼마나 신앙적으로 성숙하는 것인지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1964년 6·3사태 시위 주동자로 감옥에 있던 당시 어머니 채씨는 병든 몸을 이끌고 딱 한번 면회를 왔다.
“명박아, 어미는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교도관이 면회시간이 5분 더 남아 있다고 했지만 채씨는 “얼굴 봤으니 됐소”라며 자리를 떴다. 3개월뒤 이 대통령은 석방됐지만 채씨는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신앙적 가치관은 이후 어렵고 중요한 순간에 이 대통령에게 중요한 나침반이 됐다. 어머니 채씨가 떠난 지 45년. 어머니의 가르침은 재산기부로 이어졌다. 전·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재단 법인 청계의 설립에 즈음하여’라는 소회 발표문에서 “새벽마다 늘 이웃과 저를 위해 기도하셨던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또 “저는 오늘 어머니와의 약속을 실천했다는 것을 뿌듯하게 생각하며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어머니는 많이 배우시지 못하셨고, 정말 가난했지만 늘 남을 위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셨다”며 말을 맺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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