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에 건물이 눌린다…원곡 김기승 기념 전시회 열려

서체에 건물이 눌린다…원곡 김기승 기념 전시회 열려

기사승인 2009-07-13 17:38:00


[쿠키 문화] 평생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과 예술이 하나 되게 실천한 기독교인이자 서예가였던 원곡 김기승(1909∼2000). 서울 신문로 ‘새문안교회’ 머릿돌 휘호를 비롯해 ‘錦衫의 피’ ‘大望’ ‘水滸誌’ ‘해설 찬송가’ ‘뉴톰슨 관주 주석성경’ 등 책 제목과 ‘서울 생삼겹살’ 등 간판 글씨가 그가 남긴 서체다.

그의 글씨를 본뜬 원곡체 폰트(글꼴)는 각종 상호의 로고로 인기가 높다. 그의 서예 역정은 서당에서 천자문과 사서삼경 등을 배우던 자습기, 스승 손재형의 소전체를 흡수했던 학서기, 구양순 등 중국 대가들의 필법을 두루 섭렵했던 실험기, 독특한 원곡체 완성기 등 네 시기로 분류된다.

원곡체는 끊어질 듯하면서 이어지는 ‘대담낙필’(大膽落筆)로 강약의 리듬이 살아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굵고 가는 점획과 크고 작은 글자에 의한 음양대비가 두드러진 것도 특징이다. 1973년 개관한 남산 국립극장 현판 글씨가 얼마나 힘차고 웅장했던지 건물이 눌린다는 여론이 들끓어 결국 현판을 내리는 곡절도 겪었다.

한글과 한자를 병행한 그의 서예는 기운생동하는 조형과 내용, 성령으로 충만한 정신과 생활이 하나로 어우러진 작업이었다. 이런 신념은 “붓끝에 써지는 글씨가 붉은 꽃송이로, 내 혈관에서 나오는 혈서인양 착각을 느낄 때에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는) 예수님을 생각한다”고 고백한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비판도 없지 않았다. 58년 첫 개인전 이후 35년 동안 똑같은 글씨를 선보였다는 점, 농담을 달리한 5가지 먹색으로 상형문자 등을 여러 번 겹쳐 그린 묵영(墨映) 작업은 ‘서구추상미술의 아류’라고 지적받았다. 하지만 그는 “한가지 서체를 완성하려면 30년도 부족하다. 매일 밥 먹듯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기량을 닦아야 한다”며 묵묵히 작업에만 임했다.

원곡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오는 17일부터 8월1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말씀대로’라는 타이틀로 열린다. 한글과 한문 글씨를 비롯해 전서와 예서, 해서와 행서체, 묵영 등 원곡의 서체별·시기별 대표작 150여점이 전시된다. 원곡의 9주기인 8월14일 ‘제31회 원곡서예문화상 시상식’도 열린다.

이번 전시는 원곡의 막내사위로 원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김 전 장관은 “생전에 선생의 성품이 얼마나 강직한지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에 태워버릴 정도였다”면서 “이번 전시가 원곡체를 정리하는 자리일 뿐 아니라 우리 서예가 재인식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뭔데 그래◀ 사랑이라는 이름의 구속…김연아 아이스쇼 파문, 어떻게 보십니까

이광형 기자
ghlee@kmib.co.kr
이광형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