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기업이 희망이다] 국내 화구시장 판도 바꾼 신한화구

[강소기업이 희망이다] 국내 화구시장 판도 바꾼 신한화구

기사승인 2009-07-26 18:50:00

[쿠키 경제] 물감을 만드는 이답게 한복린(84) 신한화구 회장의 표정은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다채롭다. 환하게 웃다가도 금세 진지해지는가 하면 어느 순간 사랑스런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처럼 상대를 지그시 바라본다. 그 온화한 모습은 가난한 고흐에게 물감 등 화구를 대줬던 고흐 그림 속 탕기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한 회장이 평생을 바친 신한화구는 수입품 일색이던 국내 화구시장의 판도를 돌려놓은 국내의 대표적인 미술재료 회사다. 1967년 한일양행이라는 이름을 걸고 5명의 직원으로 출발해 지금은 직원수만 150명 내외, 매출액 200억원에 이르는 회사로 성장했다.

국내에서 미대 입시생을 비롯한 화가들이 사용하는 전문가용 화구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대만을 비롯한 35개국에 연 200만달러 정도 수출하고 있다. 포스터 칼라, 수채화물감, 디자인용 마카 등 생산하는 화구 종류만 1000여개로 생산품목 수에 있어 미국 ‘콜아트’ 및 일본 ‘홀베인’과 함께 세계 3대 회사로 손꼽힌다.

“북한에서 내려와 부산에서 문구 장사를 하다가 보니 파는 물감들이 거의 다 일본에서 만든 것이었지. 삼각자, T자 같은 문구에 비해 만들기가 어려워 남들이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게 물감이었는데 오히려 그점이 나에게는 매력적이었어.”

함경남도 안변군 출신인 한 회장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당시 가족 및 친지들과 흩어진 후 홀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남들이 이틀도 하기 힘들다는 야간 부두 하역 작업을 20일 간 하며 성실히 모은 돈으로 문구점을 차린 후 지금의 회사를 세웠다.

창립 초기에는 일본 회사와의 제휴를 통해 성장했지만 점차 일본의 기술력에서 벗어나 1979년에는 오히려 일본으로 역수출하기에 이른다. 이후 대만 등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판로를 점차 확대해나가다가 1985년에는 마침내 미국에 진출해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처럼 수출 규모를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최초로 국제화구무역협회(NAMTA)에 가입하고, 미국 미술창작 재료연합(ACMI)에 가입하는 등 시야를 해외로 넓히면서 그에 맞는 화구 품질 향상을 위해 꾸준히 매달린 덕분이다. 신한화구의 서울 불광동 본사 입구 문에는 ‘품질과 납기는 기업의 생명이다’는 문구가 붙어 있을 정도로 품질 향상에 대한 한 회장의 고집은 남달랐다.

한 회장은 “일편단심으로 한 군데 집중해서 일을 해야지 다른 것들에 관심 두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며 “화구 품질을 위해 평생을 바쳐 이젠 외국 어디 내놔도 손색 없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신한화구가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또다른 밑바탕에는 사람을 중시하는 한 회장의 철학이 깔려있다. 한 회장은 자서전에서 “돈이나 곡식 따위를 저장한다는 뜻의 한자인 ‘저(儲)’자가 재물을 모으는 일이어서 쇠 금(金) 변을 쓸 만하지만 굳이 사람 인(人)자를 쓰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야 재물을 모을 수 있다는 진리를 함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신한화구의 사훈 ‘인화, 성실, 창의’의 맨 앞자리가 인화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렇듯 사람을 중시하는 분위기 덕분인지 신한화구의 임직원들은 대부분 한솥밥을 먹으며 수십년을 함께 일해 왔다. 올해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한 정우복(52·여) 업무총괄 이사만 해도 여상을 졸업한 10대 때인 1973년 이 회사에 입사한 후 36년째 신한화구에서 일하고 있다.

신한화구는 이제 또다른 도약을 준비중이다. 한 회장의 뒤를 이어 실질적인 경영을 맡고 있는 장남 한복근 사장은 현재 20% 수준인 신한화구의 수출 비중을 50%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 사장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해외 미술재료 전시회 등을 직접 챙기며 해외 영업에 주력하고 있다. 해외영업팀을 신설하고 미국 지사를 신설한 것도 제2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김현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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