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별이 지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별이 지다

기사승인 2009-08-04 17:23:00

[쿠키 스포츠]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7)씨는 한국 수영의 역사 그 자체였다. 해남 시골뜨기 조씨는 어린 시절 고향 실개천과 바다에서 자연스럽게 수영을 배웠다. 수영으로 이름을 떨치겠다는 일념으로 해남고 1학년 때인 1968년 말 자퇴서를 내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그가 정착한 곳은 서울 종로 2가 당시 국내 유일의 실내 풀이 있었던 YMCA 수영장 근처 간판집이었다. 구두닦이, 간판집 점원 일 등을 하며 끼니를 때운 그는 짬을 내 YMCA 수영장에 등록, 수영 실력을 갈고 닦았다.

조씨가 출전한 첫 대회는 1969년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전이었다. 수영복이 없어 사각팬티를 입고 경기에 나선 그는 자유형 400m와 1500m를 석권하며 순식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명문 양정고에 스카우트돼 본격적인 수영 선수로서 수업을 쌓았다.

조씨는 양정고 2학년 때인 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우승하며 ‘아시아의 물개’란 애칭을 얻었다. 당시 귀국 때 김포공항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하며 금의환향했다. 4년 뒤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도 같은 종목 2연패를 달성했다.

수영선수로서는 환갑을 넘은 나이에 출전한 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선 접영 200m 동메달을 따낸 뒤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접었다. 조씨는 현역 시절 50여개의 한국 신기록을 수립해기록 제조기로 불리기도 했다.

현역에서 물러난 그는 시야를 좁은 수영장에서 넓은 바다로 옮겼다.

80년 8월11일 사상 최초로 대한해협을 13시간16분 만에 횡단하며 한국인의 기개를 세계에 과시했다. 2년 뒤엔 현지 가이드가 체재비를 몽땅 갖고 달아난 와중에서도 32㎞의 도버해협을 건넜다.

하지만 고인은 2001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전처와 사별한 이후 우울증으로 한때 술을 마시며 좌절하기도 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바다을 향한 고인의 도전 정신이었다.

고인은 광복 60주년인 2005년, 두 아들 성웅·성모 씨와 함께 울릉도-독도를 횡단했고, 지난해에는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프로젝트에 성공하는 등 잠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수영 인생의 마지막 도전으로,
실제 나이로 환갑을 맞는 동시에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이 되는 내년에 다시한번 대한해협을 건널 작정이었다. 이를 위해 조씨는 지난달 27일까지 제주도에서 전지훈련 등을 했던 것으로 확인돼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한국인의 저력과 함께 60세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도 보여주겠다”던 고인은 결국 예기치 않았던 심장마비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지영 기자,해남=이상일 기자
jyjang@kmib.co.kr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장지영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