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왔네, 왔어. 북한 조문단이 왔어."
21일 오후 3시5분쯤 서울시청 인근 커피숍에서 방송 수신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기의 창을 유심히 보고 있던 김정헌(66·서울 성북동)씨가 탁자를 탁 치며 말했다. 뉴스에선 북한에서 내려보낸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마주 앉은 이성균(65·길음동)씨는 "그러냐? 나도 좀 보자"며 김씨와 전화기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두 사람은 뉴스에 시선을 모은 채 남북 관계 개선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했다.
시민 대부분은 북한 조문단을 반겼다. 주부 김효정(40)씨는 "우리는 한민족이지 않으냐. 북측에서 조문하러 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남북 화합을 위해 노력한 고인의 업적과 함께 한민족 간 사랑이 되살아나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돌아가는 신익범(70·군자동)씨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번 조문으로 남북 관계가 우호적으로 돌아서면 좋겠다. 그게 고인의 뜻이자 우리 바람이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북측 조문 소식을 전해 들은 이영자(62·여)씨의 얼굴엔 희색이 돌았다. 이씨는 "남북 분단으로 가족이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금도 북한에서 미사일을 쏜다거나 쐈다고 할 때마다 가슴을 졸인다. 나라 관계라는 게 단번에 좋아지긴 어렵겠지만 이런 걸로 점차 우의를 다져나가야지"라고 말했다.
종묘공원에 있다 서울광장을 찾은 김모(72)씨는 눈살을 찌푸렸다. 김씨는 강한 어조로 "거기 무슨 의미를 부여해. 조문은 조문이지"라고 딱 잘라 말했다. 옆에 있던 이모(68)씨가 "김형, 그래도 남북 관계가 좋아지는 쪽으로 가면 좋잖수"라고 하자 김씨는 더욱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북측 사절단이 가는 곳에서는 반대 시위가 열렸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와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 30여명은 오후 2시40분부터 김포공항 국제선 인근 주차장을 점거한 채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하고 남북 간 공식 채널을 통해 행동하라"며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한 사죄와 납북 어부 조기 송환을 요구했다. 여의도 국회 정문 앞 인도에선 '겉으로는 조문, 속으로는 남남갈등 조장'이라고 적힌 피켓을 든 30여명이 국회 안으로 들어가려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국회 분향소에 북측 사절단이 등장하자 조문객들은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사절단이 나갈 땐 곳곳에서 "환영합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중앙대 1학년 박성신(19)씨는 "남북 관계 증진에 기여한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상황에서 북측 조문단이 오는 건 당연하다. 우리도 갈 일이 있으면 가야 한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이용돼선 안된다"고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임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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