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건설회사의 여성 임원은 어떨까. 잔뜩 호기심을 갖고 25일 홍윤희(48) SK건설 환경사업추진실 상무를 만났다. 호탕한 여장부 스타일일 것이란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작은 체구에 얌전한 목소리까지 천상 여자였다. 건설회사에서 임원하려면 술도 제법 해야 할 법한데 홍 상무는 술도 전혀 못한단다.
지난해 화학회사인 SK케미칼에서 옮겨온 데다 맡은 업무도 건설 본연의 성격보다 환경쪽이다 보니 선입견과 차이가 나는 듯 했다. “사실 건설사에서 일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오히려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화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거기에 묶여 저 자신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여성에 대해 갖는 일부 사회적 편견에 대해서도 단호히 거부했다. 홍 상무는 “특별히 여성이라는 점을 의식하고 일한 적은 없었다”며 “오히려 환경 관련 일은 감성적인 영역을 포함하는 것이어서 남성보다 여성이 더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보다 우리나라에 사실 똑똑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되지만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대가가 부족한 것은 여러 분야를 섭렵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이끌고 있는 환경사업추진실은 SK건설이 지난해 11월 신설한 조직으로 SK건설의 친환경 경영을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환경경영은 기업이 각종 환경 관련 규제에 맞추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관련한 사회적 책임을 진정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환경경영을 다른 기업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기업 구성원들이 진정성을 갖고 장기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홍 상무는 원래 미국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연구원 출신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C)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고 화학회사인 허큘리스사에서 근무하다 1992년 SK케미칼에 과장으로 입사했다. SK케미칼에서는 회사의 주력 품목 중 하나인 고기능성 수지 ‘스카이그린’ 개발을 주도했고, 미국에서는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마케팅 및 사업개발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그가 환경경영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 3월 SK케미칼 내에서 환경관련 스터디팀 운영을 맡으면서부터다. 홍 상무는 “주제별로 환경 관련 스터디를 하면서 사업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좀더 근본적으로는 기업이 친환경적으로 경영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봤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환경사업추진실을 통해 구체화돼 SK건설 내부로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실내 적정 온도 맞추기, 점심시간 소등, 자기 컵 쓰기, 재생용지 활용 등이 SK건설에서는 보편화됐다. 이 밖에 SK건설은 지난 5월부터 매달 이틀을 ‘채식의 날’로 지정하고 있다. 채식의 날에는 서울 관훈동과 순화동 SK건설 사내 식당에서 모두 채식 식단으로만 구성된 식사가 제공된다.
어떻게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일이지만 소고기 1㎏을 얻는 데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량이 자동차 한대가 250㎞를 운행하면서 발생하는 양과 맞먹고, 가축을 기르는 목장에서 발생하는 오수가 인류의 배출량보다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채식의 날 행사가 주는 울림은 크다.
이와 관련 홍 상무는 “환경경영의 개념을 정착시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작은 것부터 한가지씩 실천해 가면서 구성원들의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회사 내부 인식 변화와 함께 홍 상무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환경 교육이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교재를 이달 말 1차로 완성해 이르면 다음달 중으로 사내 직원들을 파견해 현장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글=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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