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에서 ‘지팡이 사기극’ 발생…철제 지팡이 들이밀고 돈 뜯어내

서울 곳곳에서 ‘지팡이 사기극’ 발생…철제 지팡이 들이밀고 돈 뜯어내

기사승인 2009-09-09 20:25:00


[쿠키 사회] 지난 8일 오전 9시35분쯤 서울 개봉2동 킴스클럽 인근 골목. 왕영신(30)씨는 포르테 승용차를 몰고 회사로 가는 길이었다. 오른쪽 길가에서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오는 70대 노인을 지나치는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운전대로 미동이 느껴졌다. 방금 스쳐 간 노인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차 밖으로 뛰어나온 왕씨에게 노인은 큰소리를 쳤다. “이 사람아. 사람을 치고 다니면 어떡하나.” 철제 지팡이는 차바퀴 밑에 깔려 있었다. 왕씨가 인근 약국에서 산 청심환을 삼킨 노인은 휘어진 지팡이를 들어 보이며 물어 달라고 했다. 왕씨가 “병원에 가자”고 하자 노인은 짜증을 부렸다.

“이 지팡이가 원래 18만원인데 성의 표시나 해. 10만원도 없어?” 노인은 자신은 괜찮다며 지팡이 값을 요구했다. 은행 위치까지 알려주는 노인에게 왕씨는 현금을 건넸다. 차 안에 달린 감시 카메라는 회사에 와서야 떠올랐다. 녹화 영상에서 도로와 수직이던 노인의 지팡이는 사고 직전 승용차 쪽으로 꺾어지고 있었다. 지팡이를 고의로 차 바퀴에 밀어넣은 듯했다.

이러한 일이 최근 서울 곳곳에서 빈발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창동, 홍은동, 천호동에서 차를 몰다 구부러진 철제 지팡이를 들이미는 노인에게 10여만원을 물어줬다는 경험담이 잇따랐다. 주로 출근 시간에 폭이 좁고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발생했고 지팡이 값만 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쇠로 만든 지팡이는 대부분 10만원에 못 미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1만∼7만원대 제품이 대부분이다.

지난달 초 전북 군산에서는 지팡이 파손을 빙자해 20여차례 돈을 뜯어낸 이모(50)씨가 사기·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씨는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 앞에서도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놀란 운전자들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에 지팡이 값을 물어줬다”고 전했다. 2005년 9월 경남 김해에서도 똑같은 수법으로 사기 행각을 벌인 이모(68)씨가 붙잡혔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고용찬 상담원은 “사고 현장에서 양자가 합의했더라도 일부러 지팡이를 차 밑에 넣은 사실이 확인되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서에 신고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사진·동영상 = 왕영신씨 제공
kcw@kmib.co.kr

[노인 지팡이 사기] 동영상은 여기에

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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