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일요일이었던 지난 2월 22일 이동근 지식경제부 무역투자실장은 기자들에게 그달 20일까지의 수출입 상황을 설명하며 “무역수지가 큰폭의 흑자로 반전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매월 초 수출입동향을 발표하기까지 수출입과 관련 별다른 언급이 없던 전례에 비춰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역수지에 대한 의견 표명은 장관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같은 달 26일 ‘민간 연구개발(R&D) 투자 촉진 라운드 테이블’에서 “2월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경부가 무역수지와 관련해 ‘속도 위반’을 했던 것은 당시 사정이 급박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위기 직전 1100원 안팎을 오르내리던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어섰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환율이 1700원대까지 간다는 전망부터 3월 위기설, 9월 위기설 등 각종 설이 난무했다.
그러던 환율은 2월 수출입동향이 공식발표된 직후인 3월 3일 1573.6원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1월 37억7355만달러 적자로 출발했던 무역수지가 28억1948만달러 흑자로 돌아선 영향이 컸다. 수출감소율보다 수입감소율이 커서 나타나는 ‘불황형 무역흑자’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기조는 지난달 16억7000만달러(잠정치) 흑자를 기록할 때까지 7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7월까지 무역수지는 251억6592만달러를 기록하며 연말까지 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외환위기로 수출과 수입이 각각 2.8%와 35.5% 감소해 모두 390억3138만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던 1998년 이후 최대 규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이 불황형 흑자이긴 하지만 선방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세계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불황형 흑자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가격 효과가 크긴 하지만 핸드폰, 디스플레이 등의 점유율 상승으로 얻는 실익이 크다”고 말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주요 산업들의 제품 경쟁력이나 재무건전성이 좋아진 게 주효한 거 같다”고 설명했다.
지경부는 8일 ‘환율 변동이 국가별 무역에 미치는 영향 분석’을 통해 상대적으로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환율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개선 효과를 크게 봤다고 분석했다. 자료에 따르면 6월 기준 주요 15개국 통화의 달러 대비 환율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8.9% 평가 절하된 데 비해 원화는 21.5% 평가 절하됐다. 이는 우리와 주력 수출품이 겹치는 일본(9.3% 평가절상), 대만(8.2% 평가절하)보다 가격면에서 우위를 보일 수 있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이같은 가격 효과는 환율 하락과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약해질 수밖에 없다. 또 미국과 EU 등 선진국 경제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수입 감소폭이 여전히 30%대에 머물고 있어 투자 위축과 내수 침체로 연결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5월 보고서에서 자본재 수입 증가율이 지난해 11월 이후 감소세로 전환돼 이로 인한 내수 침체가 지속될 경우, 국내 잠재 성장률은 2%대로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낮은 내수 비중으로 외부 변수에 휘둘리는 구조도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업을 활성화시켜 내수를 키우고, 수출 증대로까지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7년 한국의 서비스 산업 산출액은 전산업의 40.4%에 불과해 미국(70%), 영국(66.9%), 일본(55%)에 비해 크게 낮다. 수출에서도 마찬가지다. 2007년 총 수출에서 차지하는 서비스 산업 비중은 15.7%에 불과하다. 미국(33.7%), 영국(44.8%)은 물론 제조업 강국 일본(21.5%)에 비해서도 낮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외부 충격이 왔을 때 피해를 줄이는 수출입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며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서비스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 서비스업 생산성을 높일 때가 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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